항목 ID | GC0320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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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聖里-代項面- |
영어음역 | Daeseong-ri[Daehang-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날 공자를 흠모하던 선비들이 첩첩산중에 들어와 살면서 공자와 같은 성인의 발자취를 좇아 학문을 익힌다는 뜻을 담아 대성(大聖)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공자동(孔子洞)·사기점[일명 버덕]·창평·방하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항면 대성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대항면 대성동이 되었다. 1971년 공자동·사기점이 대성1동, 창평·방하가 대성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대성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가 되었다.
[현황]
대성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8.6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90세대에 191명(남자 97명, 여자 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구성면 흥평리, 서쪽으로 주례리, 남쪽으로 구성면 상거리, 북쪽으로 향촌리와 이웃하고 있다. 대성1리·대성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대대로 경주 이씨와 강릉 유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북서쪽으로 바람재로 이어지는 지방도가 지난다. 하원천 변에 형성된 농경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비탈진 야산을 개간해 호두나무를 심어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공자동계곡으로 통칭되는 마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아온다.
자연 마을로는 공자동·창평·방하 등이 있다. 공자동은 1670년 경주 이씨, 김해 김씨, 밀양 박씨 등 세 선비가 의기투합하여 세상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정진할 수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 정착하여 평소 존경하던 공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처음 마을 이름을 정할 때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을 기려서 안연대(顔淵臺)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실제로 마을 서남쪽 석상천 변에 ‘안연대(顔淵臺)’ 석 자가 새겨진 넓은 바위가 있는데 옛날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1700년경 이 마을을 찾았던 선비 윤영섭이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공자동에서 하천을 건너 구성면 상거리 백어 방면으로 가면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섰다. 전설에 따르면 흉년이 드는 해에는 나무 구멍에서 구렁이가 나와서 울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흙으로 메워져 있다. 창평은 인근의 공자동 지명과 관련하여 노나라 공자의 고향인 산둥 성 곡부(曲阜) 인근의 지명인 창평에서 따 온 이름이다. 달리 참나무정이라고도 한다. 1750년 강릉 유씨 선비가 정착한 이래 대대로 강릉 유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