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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36
한자 甘文山城址
영어음역 Gammunsan Seongji
영어의미역 Fortress Site in Gammunsan Mountai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산9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5세기 중엽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산9 지도보기
성격 성터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취적봉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개설]

취적봉(吹笛峰) 또는 당고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삼한[감문국] 시대 때 나라에 변란이 생겨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을 불고 북을 치던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감문성과의 연관성은 알 수 없다. 감문국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231년 이찬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하는 신라군이 감문국을 토벌하고 그 지방을 군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조선 전기까지 이 지역에 감문국 때의 궁궐터와 감문국왕인 김효 왕릉 및 장부인의 묘로 전하는 장릉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개령면 동부2리에 있는 유산 밑 북쪽 일대가 옛날 삼한 시대의 감문국 궁궐터라 전한다.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감문국 궁궐의 초석으로 전해져 내려온 돌이 양천리 유동산 북쪽 밑에 있는 민가에 1969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위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산9번지 일원으로 해발 320m의 취적봉(吹笛峰) 정상부에 위치한다. 김천에서 선산으로 흐르는 감천변의 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사방의 조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5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내에서는 치성, 망대, 봉수대, 건물지, 추정문지, 집수지 등이 확인된다. 성내 구릉 정상부 및 북동 계곡과 경사면 일대에서 통일 신라 전기[679~828], 통일 신라 이전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기와와 대부완, 기대편 등 삼국 시대 토기편이 다량 확인된다.

이곳에서 수습되는 유물과 토기 자료 등이 대략 5~6세기 대로 편년되는 것으로 보아 이 산성은 5세기 중엽 이전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벽의 축성은 최하단 기단부에만 석축을 하고 그 상부에 성토하거나 삭토를 통해 성벽을 구축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인근 석축 산성의 구축 방법보다 고식 요소에 해당한다.

주변의 동부리, 서부리, 양천리 등의 고분군이 감문산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감문산성은 주로 감천과 인근 지류 등 수로와 내륙 교통로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목적으로 구축된 것으로 보이며, 전시에는 길목에서 적을 차단하는 전초 기지 역할 및 주변 지역에 대한 전달을 주로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산정(山頂) 둘레와 동북쪽 능선을 따라 축조된 토성(土城)의 흔적이 있다. 장축 방향은 남북으로 길이 200m, 높이 2.5m, 성 폭 10m이다. 동쪽 성 밖은 급경사를 이용해 구축하였다. 동남쪽 약 10m 지점에는 본성의 외성으로 보이는 토성이 20m 정도 구축되어 있다. 취적봉 정상은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봉수지(烽燧址)로 추정되는 돌로 쌓은 구조물이 남북으로 5개가 늘어서 있다. 취적봉에서 삼국 시대 와편(瓦片) 여러 점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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