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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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國三將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ree Chinese Genera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명국삼장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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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명국삼장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송덕비 |
건립시기/일시 | 1599년(선조 32) 건립|1713년(숙종 39) 중건 |
관련인물 | 이공(李公)|임제(林濟)|남방위(藍芳威) |
재질 | 흑운모 화강암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0-2 |
소유자 | 공주시 |
관리자 | 공주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개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기리는 사은송덕비(謝恩頌德碑)이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건립경위]
공주의 백성을 왜군으로부터 보호해 준 명나라 세 장수의 공을 새긴 명국삼장비의 처음 건립 시기는 이들이 공주에 주둔하였던 이듬해인 1599년(선조 32)이었다고 한다. 원래 비석은 금강변 남안에 세워졌었는데, 그 후 홍수로 물속에 매몰되어 자취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임제의 비문 추기에 의하면, 고을 아전의 꿈에 홀연히 백발노인이 나타나 간곡하게 비를 다시 세우도록 부탁하였으며, 이를 전해들은 당시 관찰사 송정명(宋正明)이 적극 지원하여 1713년(숙종 39) 옛 비에 의거하여 새 비석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들 비석은 다시 일본인들에 의하여 공주 읍사무소 뒤뜰에 매몰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되었다.
[위치]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명국삼장비는 공산성 내의 임류각 아래에 자리한 비각 안에 위치해 있다.
[형태]
비의 지붕돌은 지붕[옥개(屋蓋)] 모양이나 대형의 보주(寶珠)를 올려 높게 처리하였다. 비신(碑身)은 박리 현상으로 인해 비문이 선명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왜구(倭寇) 등의 글자를 훼손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으로 비면에 탄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일사은비(忘日謝恩碑)의 규모는 총 높이 172㎝, 비신의 높이 163㎝, 너비 60㎝, 두께 32㎝, 자경 3×4㎝이다. 위관임제비(衛官林濟碑)의 규모는 총 높이 173㎝, 비신의 높이 154㎝, 너비 48㎝, 자경 3×4㎝이다. 유격장 남공종덕비(遊擊將 藍公種德碑)의 규모는 총 높이 168㎝, 비신의 높이 157㎝, 두께 15㎝, 너비 70㎝, 자경 3×4㎝이다.
[금석문]
망일사은비는 1713년(숙종 39) 관찰사 송정명이 3비의 건립 내력과 경위를 밝힌 것으로 삼장비문의 서론적 내용을 담고 있다. 망일사은비에는 1599년(선조 32) 당시 공주에 주둔한 제독 이공을 칭송하는 원비문이 적혀 있다. 성균진사 이식(李拭)이 찬하였고 관찰사 송정명이 서하였다. 제천현감 이진유(李眞儒)가 전을 썼다.
위관임제비는 성균진사 이식이 찬하였고 숙종조 개수 시에 김위성(金渭聖)이 서하였으며 제천현감 이진유가 전을 썼다. 유격장 남공종덕비는 성균진사 정습이 찬하여 남방위(藍芳威)의 공적을 칭송한 원문을 숙종 대에 개수 시에 김위성(金渭聖)이 다시 쓰고 제천현감 이진유가 전을 썼으며, 이경열(李景說)이 개수(改竪)의 전말을 첨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명국삼장비를 통해 당시 명나라와 조선과의 국제관계를 알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우리나라 역사 유적·유물에 대한 만행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