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55 |
---|---|
한자 | 將軍德泉君祠宇 |
영어의미역 | Shrine of Prince Deokche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 1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장군 덕천군사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장군 덕천군사우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6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장군 덕천군사우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사우 |
건립시기/일시 | 1739년 |
소재지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 101 |
소유자 | 전주이씨덕천군파종회 |
관리자 | 전주이씨덕천군파종회 |
문화재 지정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태산리[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덕천군의 사우.
[개설]
덕천군의 휘는 후생(厚生)이고 시호는 적덕(積德)이다. 정종의 10남으로 모후는 충주 성빈지씨(誠嬪池氏)이다. 성빈지씨가 흰 기린 꿈을 꾼 뒤 공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덕천의 천성이 효심이 깊고 우애로워 정종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후(厚)’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1456년(세조 2) 원종훈(原從勳)에 책록되었고, 1873년(고종 10)에 증직을 받았다.
[변천]
고종 때에는 이건창이 암행어사로 내려와 장군 덕천군사우 보수와 운영에 도움을 주었고, 일제강점기에 서울과 공주에 거주하는 종인들이 합심하여 재실(齋室)을 건축하였으며, 1960년에 대대적으로 사우를 중수했다.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장군 덕천군사우는 산의 중턱에 3단의 층대를 쌓고 서남향으로 대지를 조성, 여기에 삼문과 담장을 시설하고, 사우를 배치하였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집으로 뒤칸에는 제단을 설치하였고, 앞칸에는 참배 공간을 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이다.
[현황]
장군 덕천군사우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덕천군 묘는 본래 남한산성의 서문 밖인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거여리에 있었는데, 이 지역이 군용지로 편입되면서 1974년 장군 덕천군사우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로 이장하고 석물(石物)도 그대로 옮겨 세웠다. 덕천군의 신도비와 묘비 등도 이때 옮겼다. 덕천군 신도비는 1808년(순조 8)에 건립된 것으로 10세손인 이광사가 짓고 썼다. 신도비는 높이 250㎝, 폭 77㎝, 두께 4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