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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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璋 |
영어음역 | Yi Sejang |
영어의미역 | Yi Sej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아버지는 영안도병마평사(永安道兵馬評事)를 역임한 이목(李穆)이다.
[활동사항]
이세장은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檢閱), 대교(待敎), 주서(注書), 공조좌랑(工曹佐郞), 부교리(副校理) 등을 거쳐 1537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고, 1539년부터 1543년까지 사헌부(司憲府)의 지평(持平)·장령(掌令)·집의(執義),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부응교(副應敎)·응교(應敎)·전한(典翰) 등을 차례대로 역임하였다.
그 사이에 1542년 경기도암행어사가 되어 관찰사들의 구황(救荒) 조치를 감찰하였고, 1543년에는 시강관으로서 왕에게 환관(宦官)들의 폐해에 대하여 간하였으며, 당하관 문신들을 대상으로 한 제술(製述)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숙마(熟馬) 1필을 하사받기도 했다.
1544년 실록 편수관이 되어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에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역임하였다. 1548년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이 되었고, 황해도어사(黃海道御使)가 되어 구황(救荒)하는 일을 감찰하였다. 특지로 홍문관의 직제학과 부제학에 제수되었다. 1549년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동부승지(同副承旨)·우승지(右承旨)·좌승지(左承旨)가 되었고, 1550년 공조참의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1551년 예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호조참의,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내직으로 돌아와 병조참의가 되었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1554년 홍주목사(洪州牧使), 1556년 양주목사(楊州牧使)로 나갔고, 1577년 호분위대호군(虎賁衛大護軍)이 되었다가 1558년 모친상을 당하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상훈과 추모]
생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사후 명종(明宗)이 예관을 보내어 조문하고 부의(賻儀)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