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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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열두 풍장판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중장리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연원]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있었다.
이 두레 마당에서는 칠성제를 대동고사로 성대히 치러 인근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얻어먹고자 모이는 잔치판이 되었는데, 조선 말기 삼남의 민심을 살피러 내려가던 영의정이 마루들에 사는 양반에게 후한 접대를 받은 보답으로 농기에 마을의 번성과 평온을 기원하는 글을 쓰고 수결을 해 주었다.
이에 따라 농기는 ‘영의정 농기’ 또는 ‘벼슬한 농기’가 되어 인근 마을 농기로부터 칠성 세배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12마을의 두레패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두레 마당에서 각 두레패가 풍장 치는 실력을 겨루는 민속이 생성되었다.
[놀이도구 및 장소]
농기는 본기와 영기 12조를 갖춘다. 풍물 악기는 12개 두레 풍장패의 연주 악기로 두레의 규모에 따라 변하였다. 마루들에서는 신호 나발 한 개를 준비한다.
[놀이방법]
열두대징이풍장놀이는 여름두레 공동 작업을 끝내고 1년의 두레를 결산하는 여름두레 먹는 날의 민속놀이를 두레 단위가 아니라 연합하여 시행한 두레 민속놀이이다. 열두대징이풍장놀이에 참여하였던 마을로는 대장골[大狀-]·갑사동(甲寺洞)·되찬이[新九]·삼거리(三巨里)·갑산수(甲山水)·윗장[上狀]·농바위[牧岩]·오은이[午隱이, 일명 오미]·갑골[甲-]·신대장(新大墻)·방아달(일명 뱁새울)·마루골[宗谷] 등이 있었다.
12개의 두레 풍장패가 한 마당에서 연주를 시작하여 잘하는 마을을 따라가지 못하면 탈락한다. 열두대징이 풍장놀이는 가락의 변화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잡색놀이나 개인기 등의 실력을 겨루어 한 마을이 남을 때까지 계속하는 경연형의 풍장판이다.
처음 시작은 언제나 영의정 농기를 보유한 마루들두레의 수상쇠가 가락을 선도한다. 이후 전년도에 우승한 마을 상쇠가 나서서 가락의 변화를 계속한다. 상쇠 가락의 바꾸는 행위를 ‘꺾음쇠질’이라 하는데 두레패 중 꺾음쇠질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연주를 잘 못하면 그 두레패 전체가 탈락한다.
결승전과 같은 최종 놀이판에서 가장 쉽게 승부가 나는 부분은 상모놀이와 무동이 판이었다. 단무동이는 거의 모든 마을이 행하였으나 삼무동이를 하는 마을이 드물어 삼무동이를 하면 우승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곳의 두레 풍장패가 남았을 때 한 패가 패배를 승복하지 않으면 풍장 싸움이 두레 싸움으로 이어지며 이 싸움을 논배미두레 싸움이라 하였다.
두레 싸움 역시 놀이화되어 두레 싸움에서 이긴 마을이 우승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이 끝나면 마루들두레의 좌상이 풍장 겨루기의 우열을 판단하여 고하며 이에 이의를 다는 경우는 없었다. 우승한 두레에게 특별한 포상은 하지 않았으나 마루들두레의 농비가 넉넉한 해에는 우승한 마을에게 막걸리를 보내기도 하였다.
[현황]
열두대징이풍장놀이는 일제강점기에도 매년 계속되었다. 일제강점기 말 전쟁에 쓸 배를 만든다 하여 열두 그루의 정자 중 열 그루를 베어가 현재는 두 그루만이 남아 있다. 영의정 농기는 1975년까지 존재하였으나 새마을 운동 당시 소각되어 없어졌다. 열두대징이풍장놀이는 두레의 소멸과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점점 축소되어 1980년대 초반 단절되었다.
현재는 마루들 칠성고사와 경로잔치만 행해진다. 모든 마을의 두레가 소멸되고 마루들(공주시 계룡면 하대2리)에서 하대리 대동고사로 칠성제를 지낸 후에는 마을 경로잔치를 개최하고 있다. 중장1리에서는 이래영(사망)·고태경·안일순·진상백(사망)·김영철, 중장2리에서는 진석중·이래국·김두한, 중장3리에서는 조재영(사망)·김옥준·정을식, 하대1리에서는 변영식, 하대2리에서는 마루들 마지막 수상쇠였던 유영열(사망)과 김찬문에게서 채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