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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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龍寺華嚴結社 |
영어의미역 | Banryongsa Temple Pasting Pape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187[반룡사길 87] 반룡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호동 |
성격 | 화엄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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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고려 후기 |
발생(시작)장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187[반룡사길 87] 반룡사 |
관련인물/단체 | 요일(寥一) |
[정의]
고려 무신정권시대 고령 반룡사에서 승려 요일이 일으킨 화엄종 결사 운동.
[역사적 배경]
고려 무신정권시대에 오면 불교계에서 결사 운동이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불교가 당시 사회에서 이념적·윤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한계를 자각하고 반성하여 이를 개혁하려는 사회 변혁 운동으로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중앙 집중적인 교단 체제에 대해 독자적인 지방 불교의 형태를 지향하였다. 주도 세력 및 구성원은 주로 신앙상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참여하였으며, 대체로 지방의 일반민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중간 신분층 및 독서층의 참여와 후원으로 결성되고 유지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목적]
이인로(李仁老)의 숙부인 요일(寥一)은 고령으로 내려와 불학자(佛學者)들이 자포자기로 그치는 것을 민망히 여겨 책려(策勵)하기 위하여 반룡사에서 화엄 결사를 결성하였다. 이를 통해 이의민 정권에서 최충헌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화엄종 등 교종 사원의 승려와 경상도 지역의 승려들이 자포자기에 빠질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충헌 정권의 불교계에 대한 대대적 개편은 특히 이의민 정권과 연결되었던 불교계의 숙청 작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이의민의 복심(腹心)인 경상도 지역의 불교계가 크게 동요하자 요일이 반룡사를 중심으로 한 결사를 조직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발단]
1197년(명종 27) 이의민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명종과 연결된 왕자 출신의 승려들인 소군(小君)을 궁중에서 쫒아내고, 승통인 흥왕사의 승려 요일을 영남 지역으로 쫓아냈다. 요일은 명종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어 조정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충헌에 의해 영남 지역으로 쫓겨난 것인데, 그는 고령의 미숭산 반룡사에 내려와 주석하면서 화엄 결사를 결성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결사운동은 선종 지눌(知訥 )의 결사와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의 백련 결사(白蓮結社)가 대표적이다. 그에 반해 요일에 의해 결성된 반룡사 결사 운동은 명종에게 신임을 받던 요일이, 최충헌이 정권을 잡자 영남 지역으로 쫓겨나 일으켰고, 화엄종 계통의 결사 운동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결사 운동과 성격을 달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