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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 감리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71
한자 沃溝監理署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옥구 감리서 설치
폐지 시기/일시 1906년 10월 1일연표보기 - 옥구 감리서 폐지
성격 행정 관서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있었던 외교 및 통상 행정 기관.

[설립 목적]

1899년(광무 3) 5월 군산항이 개항되면서 군산 조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외교와 통상 사무를 전담하여 처리할 기관이 필요해져 감리서를 설치하게 되었다.

옥구항 감리의 임무와 권한은 개항장에 주재하는 각국 영사와의 교섭과 항구 내 일체 사무의 관장, 즉 외교 통상 사무 및 그곳에 거주하는 내, 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행정면에서는 관찰사와 동등한 지위로 상대하고 각 군수와 개항장 경무서의 총 책임자인 경무관에게 훈령, 지령을 내리며, 통상 교섭 사무에 관한한 부윤에 대해서도 훈령과 지령을 내릴 수 있었다. 감리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으므로 옥구항 감리는 외교와 통상 사무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임명되었다.

[변천]

1899년(광무 3) 감리서 설치 초기에는 부윤이 감리를 겸임하였다. 조성협, 안길수[안덕용으로 개명], 박승봉이 차례로 부윤과 감리를 겸임하였다. 1903년부터 부윤과 감리가 분리되면서 이후 감리로 이겸래, 정항조, 김교헌, 이무영 등이 임명되었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의 체결 이후에 외교권이 박탈당하며 폐지령이 공포되었는데, 이 폐지령은 사무를 해당 지역의 부윤에게 인계하도록 하였다. 옥구항 감리였던 이무영은 이에 따라 감리에서 해임되고 옥구 부윤으로 임명되었다.

[현황]

옥구 감리서는 옥구 북면[현 군산항 인근]에 위치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옥구 감리서는 개항 후 군산항의 외교와 통상 사무를 담당했던 곳이었다. 옥구항 감리로 임명되었던 사람들은 외교와 통상 사무에 경험이 많았으며 박승봉이나 이무영 등 개화 관료로서 독립 협회 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군산항 감리로서 이 지역의 교육이나 계몽 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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