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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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溝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개항기 군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개설]
근대 옥구군은 대한 제국 정부에 의해서 개항되어 개항장을 끼게 되면서 옥구부로 승격하였다. 이후 옥구군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옥구부로 승격되었고 1910년(융희 4) 일제 강점 이후 군산부가 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옥구현은 1895년(고종 32) 갑오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행정 구역 개편으로 옥구군이 되었다. 이후 1899년(광무 3) 군산 개항과 더불어 옥구부로 승격하고 옥구 부윤은 옥구항 감리를 겸임하였다. 그런데 1903년(광무 7) 부윤과 감리가 분리되어 감리를 따로 임명하게 된 이후 부는 다시 군이 되었다. 이후 을사 늑약 이후 군산에 이사청이 설립되고 감리서가 폐지된 뒤 옥구군은 다시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대한 제국이 일제에 의해서 강점된 후 일제는 군산항의 수탈 기지로서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옥구부를 군산부로 개칭하고 부청을 군산항의 조계지에 설치하였다.
[변천]
옥구군은 군산 개항과 함께 1899년(광무 3) 5월 8일 옥구부로 승격[칙령 제16호 1899년 5월 6일]되었다. 이후 행정 명칭 면에서도 지속적으로 부침을 겪었는데, 1903년(광무 7) 7월 3일 옥구부가 다시 옥구군으로 되었다.[칙령 제 10호 1903년 7월 3일] 그리고 을사 늑약 이후 군산에 이사청이 설립되고, 감리서가 폐지된 뒤 1906년(광무 10) 10월 1일 옥구군을 다시 옥구부로 승격하였다.[칙령 제48호 1906년 9월 24일] 그리고 일제 강점 이후 1910년(융희 4) 10월 1일 옥구부를 군산부로 개칭하였다.[조선 총독부령 제7호]
[의의와 평가]
근대 옥구군은 대한 제국 정부에 의해서 개항되어 개항장을 끼게 되면서 옥구부로 승격된 이후 1910년(융희 4) 군산부로 개칭되기까지 여러 차례 변모를 겪게 되었는데, 이는 일제가 식량 수탈 기지로서 군산을 주목하면서 진행한 식민지화 정책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