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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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대야면|서수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 최근운이 경기도에서 임피로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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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최근운 입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
세거|집성지 | 경주최씨 세거지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
묘소|세장지 | 최호 장군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
성씨 시조 | 최치원(崔致遠) |
입향 시조 | 최근운(崔墐雲)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15세기에 최근운(崔墐雲)이 경기도에서 임피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군산시 개정면과 대야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연원]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이 857년(신라 헌안왕 1)에 옥구 내초도에서 출생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2살 때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인 874년[나이 18세]에 외국인을 위한 과거인 빈공과에 급제하여 내외의 관직을 두루 거쳤고, 황소의 난이 발발하자 병마도통(兵馬都統) 고병(高餠)의 서관(書官)이 되어 「토황소격문」을 저술하여 명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885년(헌강왕 11)에 신라로 귀국하여 시독(侍讀)과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진성 여왕 때에는 국가의 정치가 날로 문란해지자, ‘시무 10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관직에서 물러나 산간에 은둔하면서 당시 각 지역에 번창하였던 선종의 명망있는 여러 스님들의 비문을 지었는데, 그 중에 4개의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입향 경위]
최치원의 12세손인 최근운이 15세기에 경기도에서 임피현[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안산리]으로 입거하였다.
[현황]
최근운이 임피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군산시 개정면과 대야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 중에는 무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임진왜란 때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충청도 수군절도사로서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최호(崔湖)이다. 최호는 최근운의 현손이다.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경주최씨 인구 현황은 조사된 사례가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