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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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梁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옥서면|개정면|대야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지 | 풍촌리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풍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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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성산면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
묘소|세장지 | 척동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척동 마을 |
성씨 시조 | 양주운 |
입향 시조 | 양의생(梁宜生)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연원]
남원양씨(南原梁氏) 시조는 탐라국 삼성혈 설화에 나오는 양을나(梁乙那)이다. 양을나의 후손이 고려 원종 조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태자중윤(太子中允)을 지낸 양주운(梁朱雲)인데, 양주운이 남원양씨의 실질적인 시조이다.
[입향 경위]
양주운(梁朱雲)의 7세손인 양의생(梁宜生)은 고려조(高麗朝)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관직이 삼중대광 우정승 겸판위위시사에 이르렀다. 고려 말에 국세가 기울어 다시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뜻을 같이 하는 8명과 더불어 관직을 버리고 남쪽으로 옥구현 동쪽 풍촌리에 이주하여 거주하면서, 살고 있는 자취를 감추었다.
[현황]
양의생(梁宜生)이 고려 말에 옥구현 풍촌리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서수면 서수리, 마룡리, 옥서면 옥봉리, 개정면 통사리, 옥서면 선연리, 대야면 지경리 등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양의생의 아들 양권(梁權)은 1401년(태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홍문관 교리, 이조 판서, 대제학 등을 지냈다. 양권이 이조 판서를 지냈다는 이유로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을 남원 양씨 이조판서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양씨의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