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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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紆州黃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 - 황준, 완주군 고산에서 군산시 나포면 주곡리로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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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주곡리 -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주곡리 |
성씨 시조 | 황거중(黃居中) |
입향 시조 | 황준(黃濬) |
[정의]
조선 시대부터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우주황씨(紆州黃氏) 참판공파(參判公派)는 경릉 참봉(敬陵參奉)을 지낸 황준(黃濬)[시조 황거중의 14세손]이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 무렵에 고산에서 처가[여산송씨]가 있는 임피(臨陂)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성산면 대명리, 부곡리, 나포면 부용리, 주곡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연원]
우주황씨(紆州黃氏) 시조 황거중(黃居中)은 자(字)가 경덕(敬德)이고, 호(號)가 사가재(四佳齋)이다. 1358년(고려 공민왕 7)에 태어났고, 1433년(세조 15)에 사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영민하고 스스로 글을 짓고 경서를 해독할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 이외의 것을 생각해 내었다. 고려 말에 이성계가 아기발도를 남원 운봉에서 정벌할 때에 종사관이 되어 용의주도한 묘책을 내어 왜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정당문학에 임명되어 각 주와 군에 교수와 훈도의 직책을 두게 하였고, 공조 전서와 이조 판서에 임명되었으며, 불교를 물리치고 성리학을 진흥시킨 공로로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나이가 들어 고향 우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니, 학문을 숭상하는 풍습이 크게 일어났다.
[입향 경위]
황거중(黃居中)의 13세손 황준(黃濬)은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 무렵에 고산에서 처가가 있는 임피로 들어와 거주하였다. 황준의 장인은 송회열(宋恢烈)[본관 여산]이다. 황준은 경릉 참봉을 지냈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다시 찰방을 수여하였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현황]
황준(黃濬)이 임피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성산면 대명리, 부곡리, 나포면 부용리, 주곡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임피에 세거한 황준의 후손들은 황준의 증조인 황기가 호조 참판을 지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우주황씨 참판공파라 부르고 있다. 현재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우주황씨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파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