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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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張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서수면 |
집필자 | 김두헌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에 세거한 성씨.
[개설]
조선 시대 군산 지역에 세거한 인동장씨(仁同張氏)는 현재 3파가 확인된다. 첫째는 인동장씨 황상파(凰顙派)이고, 둘째는 인동장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이며, 셋째는 인동장씨 남산파(南山派)이다.
[연원]
인동장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호(號)가 청운(靑雲)이고, 옥성군(玉城君)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충절공(忠節公)이다. 국자감 제주와 평장사를 지냈다.
[입향 경위]
인동장씨 황상파는 15세기에 장천붕(張天鵬)[인동장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1세손]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장천붕의 후손들이 임피면 미원리, 서수면 금암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인동장씨(仁同張氏) 판서공파(判書公派)는 15세기에 장천열(張天烈)[인동장씨 시조 장금용의 18세손]이 적성에서 옥구로 이거하면서 장천열의 후손들이 옥구현과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인동장씨(仁同張氏) 남산파(南山派)는 18세기에 장수각(張壽珏)[인동장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7세손]이 옥구에 입거한 이후 장수각의 후손들이 옥구읍 옥정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인동장씨가 옥구읍 옥정리 일대에 12가구 42명, 서수면 금암리 일대에 21가구 85명, 임피면 미원리 일대에 12가구 62명이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이후 군산에 거주한 인동 장씨의 인구 현황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인구를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