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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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중엽 - 임피 산곡리로 이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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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산곡리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
묘소|세장지 | 산곡리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
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입향 시조 | 이맹인(李孟仁)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16세기에 이맹인(李孟仁)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한양(漢陽)에서 임피(臨陂)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전주이씨(全州李氏) 익안 대군파(益安大君派)라고 부르고 있다.
[연원]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혼인하였고,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이한의 선대 조상들이 언제부터 전주에서 세거하였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이한 이후 전주에 세거하여 전주를 본관으로 삼게 된 것 같다. 후손 중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이린의 형 이의방(李義方) 등은 고려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후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동북면(東北面)으로 이주하여 여진족이 사는 지역으로 임시 옮겨가 살기도 했고, 뒤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전주이씨는 조선의 왕실이 되었다. 이후 자손이 크게 번성·현달하여 파계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입향 경위]
익안 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고손 이맹인이 16세기 전반에 기묘사화를 피하여 한양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성산면(聖山面) 산곡리(山谷里)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일대에 전주이씨 익안 대군파가 86가구 383명 살았다고 한다. 이중 산곡 마을과 산남 마을에 80가구 320명이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