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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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73년 - 청주한씨 입향조 한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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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전반 - 한우가 양주에서 임피로 입거함. |
본관 | 청주 - 충청북도 청주시 |
입향지 | 보덕리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
세거|집성지 | 보덕리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
성씨 시조 | 한란(韓蘭) |
입향 시조 | 한우(韓遇) |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임피현] 지역에 세거한 성씨.
[개설]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15세손이고, 정랑공 한질의 손자인 한우(韓遇)가 16세기 전반 무렵에 양주에서 임피현[현재의 군산시 대야면]에 입거한 이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일대에 후손들이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청주한씨 정랑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입향 경위]
한우[1473~?]는 좌우승지 및 도승지를 지냈다. 16세기 전반에 연산군이 광포하여 정치가 매우 어지러워지자 양주에서 임피로 입거하면서부터 후손들이 임피현 대야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한우의 묘는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금성산에 있다.
[현황]
한우가 임피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대야면 보덕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보덕리 일대에 청주한씨가 12가구 37명이 살았다고 한다. 한우의 6세손 한홍적(韓弘績)은 1652년(효종 3) 증광시 생원시 합격하였고, 15세손 한영교는 1855년(철종 6) 식년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군산에 거주한 청주한씨의 인구 현황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