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3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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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勝彬 |
영어공식명칭 | Park Seungbin |
이칭/별칭 | 학범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국어학자이자 교육자.
[가계]
박승빈(朴勝彬)[1880~1943]의 본관은 반남. 호는 학범(學凡)이다. 부인은 여산 송씨로 송영회(宋榮晦)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승빈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주오 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법관으로 재직하다가 1910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조선 변호사 협회 대표로서 중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18년 계명 구락부(啓明俱樂部) 창립에도 참여하였고, 기관지 『계명(啓明)』을 간행하였다. 1925년에는 보성 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운영난에 봉착한 학교를 경영하는 데 힘썼다. 보성 전문학교와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서 조선 어학을 강의하면서 국어 표기법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31년 조선 어학 연구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1934년 2월에는 기관지 『정음(正音)』을 간행하여 국어 표기법에 대한 글을 싣기도 하였다. 박승빈은 대중이 사용할 정서법은 간편해야 한다는 간편주의와 표기법은 역사적 지속체여야 한다는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조선어 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대하였지만 사회적으로 동조를 받지 못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승빈은 1931년 『조선 어학 강의 요지(朝鮮語學講義要旨)』를 발간하였고, 이를 확대해 1935년 『조선 어학』을 간행하였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