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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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봉동은 경인선과 남부순환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남쪽에 있는 개웅산의 ‘개’자와 양천구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매봉산의 ‘봉’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영조 때 부평도호부 갈탄(葛灘)이었고, 1895년(고종 32) 인천부에 속하였다. 1896년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 갈탄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평군 계남면 개봉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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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속하는 법정동. 구로동은 옛날 마을에 노인 아홉 명이 오랫동안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조선 영조 때까지는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 구로리였고, 1795년(정조 19)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개칭됨에 따라 시흥현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 98호에 따라 시흥현이 시흥군으로 바뀌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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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구로 지역에서 사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는 통신 수단으로, 우역제(郵驛制)와 더불어 신식 우편과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전근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 방법이었다. 역마(驛馬)나 인편보다 시간적으로 단축되었고, 신속한 효용성을 발휘하여 지방의 급변하는 민정 상황이나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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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73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 부(府)·군(郡)을 폐합하였고, 4월 1일에는 면(面)의 폐합을 단행하였다. 그 기준으로 부는 조계지(租界地)를 포함하여 시세 시행 지역과 동일하게 하였고, 군은 면적 약 40방리(方里)에 인구 약 1만 명, 면은 면적 약 4방리에 800가구로 하여 전국을 12부 220군 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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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31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신설된 부천군의 15개 면 가운데 하나로 계양산 남쪽 마을 내지 동리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시행된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 방침에 따라 신설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는데, 군과 면의 수를 줄여 지방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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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 제98호에 따라 지방 제도의 일대 개혁이 단행되어 482년간 계속되어 온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제가 시행되었다. 이때 종래의 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이 대부분 군으로 통일되면서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는 부평군(富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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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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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근대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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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1895년(고종 23) 5월 26일에 발표된 전문 6조의 칙령 제98호에 따라 지방 제도의 일대 개혁이 단행되어 482년간 계속되어 온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었다. 동시에 종래 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을 대부분 군으로 통일시켰는데, 이때 시흥현(始興縣)도 시흥군이 되었다. 시흥군은 5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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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공포된 칙령 제98호에 따라 8도제가 폐지되었다. 종래 유수부·부·대도호부·도호부·군·현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던 전국의 행정 단위를 군으로 단일화하여 23부 337군제를 시행하였다. 이때 종래 시흥현은 시흥군으로 바뀌고 인천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1년 뒤 1896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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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서울특별시 구로구는 1980년에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上北面)·동면(東面),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水呑面),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이루어졌다.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구로구는 기름진 평야 지대가 있을 뿐 아니라 육로·수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갖추어서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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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정조 13)인 기유년(己酉年)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됐던 호구 조사 결과를 기록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지금의 구로구 인근 지역인 금천현은 6개 면 41개 리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동면(東面)에는 독산리·가리산리·문교리·난곡리·장내리·신림리·봉천리·상도리·성도화리·서원리가 속해 있었으며, 호수는 332호, 인구는 1268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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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동은 1413년(태종 13) 부평도호부로 기록된 이래, 인천부와 경기도 부평군, 경기도 부천군에 속해 있었다. 1963년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기 전까지 궁동은 논밭과 산이 어우러진 서울 근교의 땅이었다. 고려 후기 전의이씨 가문이 정착한 궁동에는 상주박씨, 진주유씨, 안동권씨, 전주이씨, 제주고씨 등 여섯 개의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2.67㎢의 넓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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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설치되어 구로 지역을 관할하였던 근대 개항기의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무를 분화함으로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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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 정치기로 불리는 민족 분열 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 통치기 등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구로구의 중심 동인 구로동은 현재 구로 본동과 구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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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연당(蓮塘). 할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使)를 역임한 하자종(河自宗), 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하연(河演), 어머니는 이존성(李存性)의 딸인 성산이씨이다. 하우명은 1413년(태종 13) 서울 돈의문(敦義門) 밖에서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자[문종]의 스승이었던 은고(恩顧)로 1444년(세종 26)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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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국가의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단위. 현재 구로구의 행정 구역은 구로1동·구로2동·구로3동·구로4동·구로5동, 가리봉동, 신도림동, 고척1동·고척2동, 개봉1동·개봉2동·개봉3동, 오류1동·오류2동, 수궁동 등 총 15개 행정동과 신도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온수동, 항동, 궁동, 천왕동 등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