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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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花洞 |
영어공식명칭 | Myeonghwa-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화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주연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명화동(明花洞)의 지명은 마을에 목화꽃이 많이 피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나주군 관동면(官洞面) 명동(明洞)과 화동(花洞)에서 한 글자씩을 따온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명화동 지역에서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고분이 발굴되어 그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명화동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관동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坪里面)과 관동면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관동면 명동과 화동을 합하여 평동면 명화리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이 광산군(光山郡)에 편입되면서 전라남도 광산군 평동면 명화리가 되었다. 1988년 광주직할시의 구역 확장으로 광산군이 광주직할시로 편입되고 광산구가 신설되면서 광주직할시 광산구 평동출장소 관할 명화동이 되었다. 1995년 광주직할시가 광주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화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환경]
명화동은 광산구 남서부에 자리하며, 자연마을로는 골매마을[꽃매마을], 화동(花洞)마을, 명동(明洞)마을, 서동(西洞)마을이 있다. 명화동은 평동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고, 이 도로변에 골매마을과 화동마을이 있다. 골매마을과 화동마을을 합쳐 명화(明花)마을이라 부른다. 고려시대 말엽 전주이씨 이충열(李忠烈)이 목화종자를 가지고 화동마을로 들어와 재배를 권장하고 방직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화동마을 동쪽으로 평동저수지가 인접하고, 서쪽으로 삼도동, 남쪽으로 동산동, 북쪽으로 지정동과 경계를 이룬다. 주민들은 마을 주변으로 펼쳐진 넓은 경작지에 밭작물이나 시설원예 작물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현황]
2020년 11월 기준으로 면적은 1.43㎢이며, 인구는 122가구에 총 225명으로 남자가 111명, 여자가 114명이다. 명화동은 행정동인 평동의 관할하에 있다. 공공시설로는 명화보건진료소 등이 있다. 교육시설로는 1960년에 설립된 평동서초등학교가 있었지만 1998년 폐교되고 지금은 다목적 인조잔디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명화동 동북쪽에 있는 평동저수지로 가는 평동로변에 자리한 골매마을은 명화동 일대의 번화가로, 평동농업협동조합 명화지점, 상가,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평동로를 따라 골매마을을 지나 삼도동 대산삼거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명동마을이 있고, 명동마을을 지나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서동마을이 있다. 문화재로는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명화동장고분이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농가에서는 수박이나 무 등 밭작물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렸으나 근래에는 시설원예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