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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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海師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세인 |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의 성리학자 범세동이 원천석과 함께 고려 후기 학자 신현의 학문과 행적을 조선 전기에 공동 편집한 문집.
[개설]
『화해사전』은 고려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출생한 성리학자 범세동(范世東)[?~?]이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신현(申賢)[1298~1377]의 학문과 행적, 그의 문인들의 언행 등을 모아 엮은 문집이다.
[저자]
범세동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범후춘(范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鄭夢周)의 제자이다. 1369년(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덕령부윤(德寧府尹),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키고자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조선 태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전라남도 나주군 적량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마쳤다. 사후에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화해사전』은 필사본, 목판본, 활자본 등 세 종류의 판본이 있다. 1917년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던 공주 사림(士林)들이 원본과 대조를 요청하자, 영해신씨(寧海申氏) 문중에서 원본의 교정과 윤문을 거쳐 1920년 호서(湖西) 비인현(庇仁縣)[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사(栗理祠)[비인면 율리에 있는 평산신씨 관련 사당]에서 목판본을 간행하였다. 한편, 활자본은 목판본의 오자와 낙서를 교정하고 새롭게 편집하여 1935년 강영직(姜永直)이 발간하였다.
[형태/서지]
『화해사전』의 저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으로, 7권 4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 20.3×16.8㎝이며 계선이 있다. 반곽의 행자수는 10행 20자이고,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표제·권수제(卷首題)·판심제(版心題) 모두 ‘화해사전(華海師全)’이다.
[구성/내용]
『화해사전』의 ‘화해사(華海師)’는 중국의 원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동해 즉, 고려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화해사전』은 높은 학덕을 지닌 화해사 신현과 관계된 모든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권두에 이명식(李明植)의 서문이 있다. 권1에는 본조문대(本朝問對)·원주문답(元主問答)·명조문부(明朝問府), 권2에는 비모(備耗)·출처(出處), 권3에는 제자문답(諸子問答)·가범(家範)이, 권4에는 간재선생홀서주대(簡齋先生笏書奏對), 권5에는 사전계사(師全繼辭)·발미(跋尾)·제자논찬(諸子論贊)·제자서술(諸子敍述), 권6에는 가학(家學)·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세헌(世獻)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권7은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원운곡거의(元耘谷居義)·후왕고충정사(後王誥忠情辭)·후왕읍변진정문(後王泣變陳情文)·대제학신백청상소(大提學申伯淸上疏)·부언지록(附言志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권6에 실린 「역대전리가」는 한문과 이두로 표기된 가사로, 신현의 손자인 신득청(申得淸)이 1371년(공민왕 20)에 지은 가사이다. 또한 권7에 수록된 「동방연원록」은 범세동이 지은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의 내용과 대동소이하여 그가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설총에서 정몽주에 이르기까지 고려조 도통(道統)의 연원을 인물별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 관련 다른 저술에서 신현과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는 점, 『화해사전』이 19세기 말엽에 와서야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이 문헌이 위서(僞書)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화해사전』은 위서 논란은 있으나 고려 말 유학의 연원과 계통, 성리학의 전개 양상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아울러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의 존재는 고려 말 가사문학 형성의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등 문학사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