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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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雙孝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효자 2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개설]
청주한씨쌍효비는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韓弼五), 한필룡(韓弼龍)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한필오와 한필룡 형제는 본관이 청주(淸州)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1760년 부친상을 당하자 두 형제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어머니가 노망(老妄)이 나자 두 형제는 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겨울철에 산비둘기 고기를 원하자 산천을 두루 다녔으나 구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산비둘기가 방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임종에 이르러 두 형제는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입속에 피를 흘리면서 차도를 빌었으나 사망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 한필룡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62년(철종 13)에 명정(銘旌)되고 1864년에 정려비(旌閭碑)를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다.
[형태]
장방형 좌대 가운데 홈을 파고 비 몸을 세웠으며, 비 갓은 한옥 지붕 형태이다. 앞면 2칸 팔작지붕집의 정려각이 안에 있으며, 정려각의 앞면 편액(扁額)은 쌍효각(雙孝閣)이다.
[금석문]
앞면에 비제를 음각 내려쓰기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한정교가 썼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효자의 표창 과정을 알 수 있어 제도사적, 향토사적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