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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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神社 |
영어공식명칭 | Gwangjusinsa Shrin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07번길 15[구동 2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재훈 |
건립 시기/일시 | 1917년 11월 3일 - 광주신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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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45년 11월 17일 - 광주신사 폐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2년 8월 - 광주신사 전신 황대신궁 요배소 건립 |
현 소재지 | 광주공원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07번길 15[구동 21-1] |
성격 | 신사 |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던 일제강점기 신사.
[개설]
광주신사(光州神社)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12년 광주군 광주면의 구강공원(龜岡公園)[지금의 광주공원]에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요배소(遙拜所)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16년 정식 신사 창립을 출원하여 1917년 11월 3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제신으로 하는 광주신사로 건립되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당시에는 광주신사에 참배를 마치고 시내로 나온 일본 학생들과 조선 학생들의 격돌이 있기도 하였다. 1936년에는 도 단위의 대표 신사인 도공진사(道供進社)로 지정되어 지위가 승격되었다. 이에 따라 신전의 조영을 비롯한 경내 확장이 진행되어 1941년에는 국혼대신(國魂大神)의 증사를 허가받았다. 1941년 4월 10일에는 경내에 일본의 신민으로서 맹세를 강요한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새긴 기둥이 세워졌고, 1941년 10월 1일에는 일본 정부에서 유지비를 지원하는 국폐소사(國幣小社)로 지정되었다. 1942년 경내에 충영탑 건립이 결정되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구동 21-1] 광주공원 일원에 있었다.
[변천]
광주신사는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11월 17일 폐지되었고, 부지에는 광주공원이 들어섰다. 광주신사 건물은 모두 훼철되었으나 공원 내의 계단과 일부 석물은 1940년 경내 확장 때 정비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황]
1945년 폐지된 이후 광주신사 자리에는 시민들의 휴식처인 광주공원이 들어섰다. 1962년 광주공원 한 곳에 4월 19일 '4.19의거 희생영령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1963년 5월 29일에는 6.25전쟁 전몰 군경 1만 5867명을 기리는 '우리 위한 영(靈)의 탑'이 건립되었다. 광주공원 광장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군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며, 1980년 5월 27일 계엄군 재진입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공원 광장을 5.18사적지 제20호로 지정하였고, 표지석도 설치되었다. 2002년에는 전라남도 광주 출신 호국영령 4483위의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소가 설치되었으며, 2015년에는 '우리 위한 영의 탑'이 현충탑으로 새롭게 재건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고 영구화하기 위한 내선일체의 도구로 세워진 신사였지만, 폐지 이후 시민의 휴식처이자 전몰 호국영령과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