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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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相基 |
영어공식명칭 | Bak Sang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922년 - 박상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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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3년 3월 - 박상기 한국광복군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박상기 한국광복군 제3지대 본부 비서 근무, 한국광복군 기관지 『빛』 편집 담당, 미군전략정보처 전방 통신대에서 무전 훈련 이수 |
활동 시기/일시 | 1977년 - 박상기 건국포장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박상기 건국훈장 애국장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02년 - 박상기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
거주|이주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86-7번지 |
활동지 | 중국 장쑤성 쑤저우 |
활동지 | 중국 안후이성 린취안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복군 제3지대 본부 비서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상기(朴相基)[1922~2002]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228번지]에서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이었다. 1943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뒤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기관지 『빛』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활동 사항]
박상기는 1943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창설한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뒤, 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徐州] 지구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어서 안후이성[安徽省] 린취안[臨泉]에 있던 중국중앙군관학교의 10분교에 입학하여 훈련 과정을 전부 이수하였다. 1945년에는 안후이성 푸양[阜陽]에 있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기간요원으로서 지대본부의 비서직으로 근무하였고, 미군전략정보처[OSS]에서 운용하던 전방 통신대에서 무전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기관지 『빛』의 편집을 담당하여 광복군 대원들의 독립사상을 지속적으로 고취하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1945년 광복이 된 이후에는 중국에서 귀국하여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하였다. 2002년 3월 6일 광주보훈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