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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050
한자 -年七月水害
영어의미역 Natural flood damage in July, 1987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병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재해|수해
발생[시작]연도/일시 1987년 7월 26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87년 7월 27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전국

[정의]

1987년 태풍 셀마의 후폭풍에 의해 경기도 광명시 일원에 발생한 수해.

[발단]

1987년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괌에서 발달한 태풍 셀마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여 한국에 상륙, 세력이 약화되는 듯하였으나, 다시 활력을 얻어 한반도를 빗겨가면서 남동 해안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당시에는 태풍의 진로를 잘못 판단하고 엉뚱한 예보를 함으로써 사고와 재해를 키웠다는 것이 후일 밝혀짐으로써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이르렀다.

결국, 태풍 진로에서 빗겨선 광명시는 태풍 자체에 의한 피해가 누적되지는 않았으나, 정작 태풍 소멸 후 이어진 집중 호우가 재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여기에는 태풍의 진로 예측에 실패한 기상 당국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였다. 이에 따른 피해는 광명시를 포함한 전국에 걸쳐 발생, 집중 호우와 침수로 인해 약해진 지반과 건물의 붕괴, 하천과 강물의 범람 등으로 재산과 인명 피해 발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격이 되었다.

[경과]

태풍 셀마가 소멸한 이후 열흘이 지난 1987년 7월 26일부터 광명시에는 강한 바람과 389㎜에 이르는 집중 호우가 이어졌다. 7월 27일 새벽 2~3시에는 시간당 81㎜가 쏟아져 안양천목감천이 범람하고 빗물이 넘치기 시작하면서 안양천변의 하안동, 소하1동, 철산3동 등의 저지대와 목감천변의 광명5동, 광명6동 등의 저지대가 침수되기 시작, 피해가 확대되었다.

[결과]

불행 중 다행으로 광명시의 경우 전국 중소 도시 중 가장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으나 인명 피해는 극히 적었다.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학온동 등 광명시 전역에 걸쳐 약 1만 5,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그중에서 특히 하안동의 경우 6,000여 세대가, 소하1동철산3동광명5동 등은 각각 1,800세대, 1,700세대 및 1,300세대, 총 4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지속되는 호우와 침수로 귀가를 할 수 없던 주민들이 3주 이상을 외부에서 지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농경지 피해도 잇따라서 전체 경지 면적의 52%에 달하는 590㏊가 침수 또는 매몰되는 손실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총 5억 8700만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였고, 도로 10개소에 걸쳐 2,470m가 유실되었으며, 2억 25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외에도 안양천 연장 총 2,994m가 유실되어 1억 1200만 원의 재산 피해를 일으켰다.

불행히도 산사태로부터 안전할 것이라 여겨지던 광명시에서도 태풍 셀마로 인해 하안동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 주택 7동이 완파되고 어린이 1명 사망, 주민 5명이 부상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수리 시설, 새마을 시설물, 공장, 하수도 및 하천 제방 등에서 발생된 손실도 막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의의와 평가]

자연재해로서의 태풍은 그 진로와 진행 특성 등이 비교적 잘 파악된 대규모 기단의 행동 특성에 해당한다. 정확한 진로 예상과 올바른 예보 및 대책 수립은 국민의 재산, 안전 및 생명과 직결된 만큼 어떤 경우도 어떤 목적으로도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적기는 하지만 광명시에서도 사망자와 실종자 및 부상자가 발생한 점은 기상의 사전 예보와 대처 및 시민들의 적극적인 안전에 대한 대비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명시의 경우 수해 대책반을 구성, 유효적절하게 대응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하는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사망·실종자 345명 중에서 절반 가까이가 태풍의 한반도 상륙 사실을 모른 채 피항을 하지 않았던 선박들의 침몰 및 좌초에서 기인된 것으로서, 진로 예측의 실패 및 은폐가 피해를 만들게 된 것이 분명했지만, 기상청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태풍이 이미 한반도를 관통하여 동해로 진출했음에도 ‘태풍 셀마는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태풍의 이동 경로를 조작하여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남해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 사실이 드러난 것은 후일 기상청이 잘못을 시인하면서였다.”는 기록은, 자연재해가 만들어낸 참담한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고 국가와 국민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한, 재난 예방이 아니라 도리어 국가가 나서서 화를 키운 인재에 가까운 일로 기록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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