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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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崔氏 |
영어의미역 | Jeonju Cho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집필자 | 김지석 |
세거지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장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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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설월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 |
성씨시조 | 최순작 |
입향시조 | 최항 |
[정의]
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항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개설]
전주최씨는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등 4파가 있다.
[연원]
문열공파 시조 최순작은 고려의 삼한벽상공신인 최언위의 후손으로 고려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숙종 때 병부상서·신호위상장군을 지냈으며 완산부개국백에 봉해졌다. 최언위는 신라 출신으로 18세에 중국에 유학하여 과거 급제 후 42세에 신라로 돌아왔고, 고려가 개국하자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사도공파 시조 최균은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고려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이 일으킨 병란 중에 순절하여 완산군에 봉해졌다. 문성공파 시조 최아는 고려 말 평장사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국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였다. 문충공파 시조 최군옥은 동주최씨의 후예로 고려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입향경위]
『전주최씨대동보(全州崔氏大同譜)』에 따르면, 문열공 최순작의 8세손인 최사의(崔士儀)[1376~1452]를 파조로 하는 양도공파 후손인 18세손 최항(崔恒)이 광명시 노온사동 장절리에 처음 정착하였고, 이후 25세손 최영환(崔永煥)이 광명시 소하동 설월리로 이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최사의는 조선 태종 때 판돈령부사를 거쳐 공조참의·이조참의·호조참판·경기감사·판한성부사 등을 지냈고, 1450년(문종 즉위년) 판돈령부사에 제수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수염이 없고 얼굴이 노파와 같아서 세간에서 원숭이재상[獼猴相]이라고 불렀다.
[현황]
2000년 전국 성씨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는 전주최씨는 총 12만 2,147가구에 39만 2548명으로 경기도에는 총 2만 3,573가구에 7만 8369명이 거주하였다. 광명시에는 노온사동 장절리와 소하동 설월리에 세거하고 있다.
[관련유적]
광명시 노온사동 장절리에 전주최씨 선영이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14일경 시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