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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06
한자 昌寧成氏
영어의미역 Changnyeong S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김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집성촌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입향시기/연도 1550년대
성씨시조 성인보
입향시조 성춘영

[정의]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춘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연원]

창녕성씨창녕성씨 문중의 족보인 『계축보(癸丑譜)』에 따르면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하며, 묘소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맥산 기슭에 있다. 성인보의 3세손 성공필(成公弼)·성한필(成漢弼) 대에 크게 두 계통으로 갈라졌고, 6세손에 이르러 성기(成紀)를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를 포함하여 13개 파로 나누어져 세계를 이어 왔다. 광명 지역에 정착한 성춘영(成春英)의 후손으로 시조의 14세손인 성몽규는 승정원좌승지·춘추관수찬관을 지냈고, 17세손 성원준은 승정원좌승지·이조판서·사간원대사간을 지냈다. 25세손 성우경[1842~1921]은 1898년과 1904년 두 차례에 걸쳐 시흥농민봉기를 주도하는 등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입향경위]

광명 지역에 입향한 창녕성씨는 성석연의 상곡공파에서 분파된 묘령공파 후손으로, 1504년(연산군 10)에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정치적인 혼란과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성춘영이 광명시 가학동 공석골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현황]

2000년 전국 성씨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는 창녕성씨는 총 5만 2058가구에 16만 7903명으로 경기도에는 8,854가구에 2만 9784명이 거주하였다. 성춘영이 처음 정착했던 공석골은 달리 공세동(貢稅洞)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명종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성몽규가 살면서 군자감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과 세금을 받고 출납하였던 곳이어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 지역에 정착한 창녕성씨의 세거와 입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관련유적]

광명시 가학동에 성종영의 묘가 있고, 공석골창녕성씨 묘역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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