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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220
한자 近代敎育
영어의미역 Modern Education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상철

[정의]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현 경기도 광명시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변천]

갑오개혁 이후 한일병합에 이르는 기간에 새로운 교육 제도에 의한 신식 교육기관이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흥군[현 광명] 지역 내에서는 근대적인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 이는 지역적인 특성상 시흥군 지역의 교육이 향교나 서당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교육기관에 의한 한학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향교나 서당식 교육은 일제강점기에도 일정 기간 계속되었다.

1. 초등 교육기관

일제강점기 시흥군 지역의 교육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각급 학교 제도 및 교육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원익(李元翼)의 후손인 이연철에 의해 세워진 ‘운양의숙’이라는 근대식 교육기관이 있었다. 따라서 광명의 근대적 학교 교육은 1907년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 지역의 유지(有志) 이연철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운양의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운양의숙은 1911년 7월 1일 시흥군 동면[현 서울 금천구]에 시흥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면서 시흥공립보통학교의 분교장(分校場)으로 1911년 9월 4일 개교하여 1~2학년 학생 교육을 담당하였다. 3학년부터는 본교인 시흥공립보통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설립된 시흥공립보통학교는 6·25전쟁으로 소실된 후 검지산(黔芝山) 밑에 신축되었으며 시흥국민학교에 이어 시흥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현재로 이어져 오고 있다. 본래 자리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되어 터만 남아 있다.

1912년에는 시흥군 관내인 과천에 과천공립보통학교와 안양에 안양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1915년 4월에는 영등포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19년 6월에는 시흥군 남면[현 군포시]에 군포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1923년 9월에는 시흥군 군자면[현 안산시]에 군자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27년에는 시흥군 서면에 마침내 서면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는데 3월 31일 설립 인가를 받고 4월 1일에 개교하였다.

광명 지역의 본격적인 근대식 학교 교육은 1927년 4월 1일 서면공립보통학교의 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당시 시흥군 서면 소하리 905번지[현 광명시 소하동 904번지[오리로 402]]에서 개교한 서면공립보통학교는 4년제 수업 연한에 2학급 복식이었다. 1929년 『조선제학교일람』에 의하면 수업 연한 4년, 학급 수 4학급, 직원은 일본인 1명과 조선인 1명, 학생 수는 1학년 남자 32명 여자 8명, 2학년 남자 26명 여자 4명, 3학년 남자 29명 여자 3명, 4학년 남자 21명 여자 1명으로 총 124명[남자 108명, 여자 16명]이었다. 초대 교장은 일본인 기타야마였고 훈도는 성만용이었다. 당시 학교 운영 경비는 3,417원(円)이었고 학생 1인당 경비는 27원이었다.

서면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4월 1일 서면공립심상소학교로 개명되어 사용되다가 다시 서면국민학교로, 그리고 1996년 서면초등학교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 때 구 교사는 전소되어 시흥군 서면 소하리 904번지[현 광명시 소하동]에 교사가 신축되었다. 2010년 현재 교지 총면적 1만 6,730㎡, 체육장 면적 9,557㎡에 일반 교실 55개, 관리실 6개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총 41학급에 특수반 3학급, 유치원 3학급이며 학생 수는 약 1,300여 명, 교직원 수는 84명이다. 2008년 80회 졸업식을 거행했으며 1만 6,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한편 1934년 4월 1일 서면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온신초등학교’가 현재의 광명시 노온사동 360-1번지[광명로 475]에 설립되었다. 간이학교는 공립보통학교에 부설되어 있었으나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공립보통학교의 교장과 훈도를 겸임하도록 하였다. 수업 연한은 2년제이고 학급은 단급으로 편성하여 각 학년마다 40명씩 80명을 정원으로 하였으며 평균 10세 정도의 아동들을 입학시켰다. 교과목은 수신, 일어, 국어, 산술, 직업 등 5과목이었으며 수업 시간은 1주일에 30시간 이내로 하고 직업 과목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온신초등학교는 해방 후인 1947년 7월 15일 온신국민학교로 정식 개교하였으며, 1996년에는 온신초등학교로 개명하였다. 2010년 62회 졸업식을 거행했으며 총 3,78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2010년 현재 온신초등학교는 학급 수 6개, 학생 수 96명에 교장 1명, 교감 1명, 교사 9명이 근무하고 있다.

2. 유치원

일제강점기에 광명 지역에 설립된 유아 교육기관은 없었지만, 서면을 포함하고 있는 시흥군에는 유아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인천부 산수정에 세워진 인천기념공립유치원은 1900년 5월에 설립되었고, 경성부 남산정에 세워진 경성공립유치원은 1900년 10월에 설립되었다. 이에 비해 시흥군은 1929년에 이르러서야 영등포에 사립 흥화유치원이 설립되었다.

1927년 2월 시흥군 영등포의 유지 10여 명이 유치원 건립을 위한 기성회를 창립하였고, 1929년 8월 시흥군 영등포읍[현 영등포구]의 정인환에 의해 사립 흥화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이는 시흥군 내 최초의 유치원이자 한국인 어린이를 위한 유치원으로 원아 수는 총 40명[남자 29명, 여자 11명]이었으며 교직원은 외국인 남자 교사 3명과 여자 교사가 2명을 합쳐 모두 5명이 근무하였다.

한편 1929년 9월에는 또 하나의 유치원이 시흥군에 설립되었다.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사립 영등포유치원으로 27명의 원아를 수용하였다. 교사는 일본인 남녀 1명씩이었으며 원아들은 모두 일본인 자녀들이었다.

3. 중등 교육기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교육이 한국 민족의 자주 독립 정신과 고등 교육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억압하고 식민지국으로서 최소한 일인화 교육을 목표로 한 초등 및 실업 중심 교육 정책에 의해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시흥군 내에는 단 한 개의 중등 교육기관도 설치되지 못하였다.

시흥군 내의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은 해방 이후인 1949년 개교한 안양공립중학교이였다. 원래는 1947년 12월 31일 6년제의 안양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나, 개교를 앞두고 시흥 군민들이 안양중학교를 사립학교보다는 공립 중학교로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하여 1949년 1월 공립 중학교 인가를 받은 안양공립중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19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개교하였다. 1975년 3월 3일 광명고등학교가 개교했으며, 이듬해인 1976년 3월 3일에는 광명여자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이후 인구의 증가와 함께 고등학교의 개교도 잇달아 2010년 현재 9개의 고등학교로 증가하였다.

4. 야학과 농촌계몽운동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민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족운동은 도시 지역에서는 주로 야학운동으로, 농촌 지역에서는 각종 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까지의 10년간은 이러한 민족운동, 사회평등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시흥군 일대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야학이 곳곳에 개설되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과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또한 YMCA와 YWCA, 천도교의 조선농민사와 동아일보사가 중심이 되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 『광명시지』 4(광명시, 2006)
  • 경기도 광명교육지원청(http://www.goegm.kr)
  • 광명시 평생학습원(http://www.gmedu.or.kr/)
  • 서면초등학교(http://www.seomyun.es.kr)
  • 온신초등학교(http://www.onshin.es.kr/)
  • 대림대학(http://www.daeli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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