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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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 靑年 同盟 |
영어공식명칭 | Haman Youth Union |
이칭/별칭 | 함안 청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승 |
[정의]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연합체.
[개설]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청년 운동은 1925년을 전후로 ‘혁신 대회’ 또는 ‘부흥 대회’ 등을 통해 기존의 장년층 중심의 청년 단체에서 소장층 중심의 청년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군 단위의 청년 연맹들이 생겨나고 이념적 성향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이후 각 지역의 청년 연맹은 1927년 2월 전 민족적 통일 전선체인 신간회의 창립에 발맞추어 새로운 청년 운동 단체인 청년 동맹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함안 지역의 청년 운동을 지도하는 사회단체로 출현한 것이 함안 청년 동맹이었다.
[설립 목적]
함안 청년 동맹은 함안군 내에 산재한 여러 청년 단체들의 통합과 함께 신간회의 지지를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함안 청년 동맹은 1927년 10월 30일 함안 향교(咸安鄕校) 광장에서 결성되었다. 1928년 2월 도(道) 단위 최고의 청년 운동 지도 기관이었던 경상남도 청년 연맹의 가맹단체로 활동을 시작했고, 1929년 4월 함안 청년 동맹 군북 지부, 1930년 9월 20일 함안 청년 동맹 가야 지부 등을 각각 결성했으며, 1931년 4월까지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창립 당시 준비 위원은 이석건(李奭乾), 조진규(趙珍奎), 조형대(趙亨大), 강대시(姜大時), 이원세(李元世), 이호직(李鎬稷), 정점수(鄭點守), 이화석(李華錫) 등 전체 35명이었다. 1930년 9월 선임된 함안 청년 동맹 가야 지부 임원진은 박승표(朴承杓), 조진경(趙振景), 정줄기(鄭茁基), 구?현(具?鉉), 김달구(金達九), 조현경(趙顯敬), 정재학(鄭在鶴), 윤찬수(尹替壽), 안쾌중(安快中), 심만강(沈萬康), 김광파(金狂波), 조기제(趙奇濟), 이수문(李壽文), 조성무(趙性武), 구말복(具末福), 구능한(具能漢) 등이었다. 1931년 4월 당시 함안 청년 동맹의 집행 위원들은 안창준(安昌濬), 조정제(趙正濟), 박승표, 강대시, 변면섭(卞冕燮), 조진경, 조봉제(趙奉濟), 조판제(趙判濟), 조기제, 조용선(趙鏞先), 황점식(黃点植), 안진호(安辰鎬) 등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함안의 청년 운동은 물론이고 소년 운동, 농민 운동, 신간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을 지원하였다. 이밖에 1930년 10월 만주 지역에서 발생한 동포 학살 사건에 대한 규탄 대회도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