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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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咸得 |
영어공식명칭 | I Hamdeu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노익환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함득(李咸得)[1912~1956]의 본적은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 964번지이다. 일본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사립 기비[吉備] 상업 학교를 중퇴하였다. 중퇴한 뒤에 일본 노동조합 전국 협의회 토건(土建)에 가입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노동조합 전국 협의회는 1928년 3·15 사건 이후 치안 유지법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일본 노동 조합 평의회[약칭 평의회] 중에서 좌익 조합이 재결성한 단체이다. 회원은 최대 1만 2000여 명이었고, 금속·화학·출판·토건·교통 등의 전국적 산별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30년대 재일본 조선 노동 총동맹을 흡수한 토건의 경우는 조선인 노동자의 영향력이 막강하였다.
1935년 3월 이함득은 야마모토 마코토[山本實]의 권유로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가입 이후, 오사카 섬유 노동 조합과 섬유 공단이 밀집해 있던 오사카 남부 센난[泉南], 센보쿠[泉北] 지역에 지부를 조직하여 기시와다[岸和田] 실업 구제 동맹, 센슈[泉州] 일반 노동 조합 등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권익 옹호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 활동으로 1937년 3월 26일 마코토와 함께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15일 치안 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오사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0년 건국 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