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546 |
---|---|
한자 | 白鵝山共匪討伐作戰 |
이칭/별칭 | 백아산 빨치산 토벌 작전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송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10월 - 백아산 빨치산 토벌 시작 |
---|---|
종결 시기/일시 | 1955년 3월 - 백아산 빨치산 토벌 종료 |
발생|시작 장소 | 백아산 공비 토벌 작전 -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백아산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조선 노동당 전남 도당|빨치산 전남 총사령부 |
[정의]
한국 전쟁 시기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의 백아산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 활동에 대한 국군의 토벌 작전.
[개설]
화순 지역은 무등산·백아산·만연산·모후산·말봉산·화학산 등 험준한 산악 지역인데다 광주 지역 인근 전라남도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6·25 전쟁 이전부터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 간의 격전지가 되었던 곳이다. 6·25 전쟁 시기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궁지에 몰린 조선 노동당 전남 도당이 화순군 백아면 백아산으로 후퇴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되었다.
[역사적 배경]
전라남도 지역에 빨치산이라고 불리는 인민 유격대가 처음 생겨난 것은 1946년 10월 사건 이후다. 인민 유격대는 이른바 ‘작대기 부대’라는 별칭이 말해 주듯 경찰의 추적을 피해 극소수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닐 정도로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순 사건으로 정규군의 무장력이 가세하고 미군정의 극심해진 좌익 탄압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격대는 강력한 무장력을 갖추게 되었다.
화순 지역은 1946년 화순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 등 탄광 노동자들로 조직된 좌익 세력이 막강했던 지역으로, 미군정 보고서는 화순 지역을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한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험준한 산악 지역과 탄광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좌익 조직의 형성은 화순 지역이 한국 전쟁 시기 빨치산 활동과 빨치산 토벌을 둘러싼 치열한 격전의 무대가 되는 배경이 되었다.
[경과]
화순 지역에 북한 인민군이 들어온 것은 1950년 7월 23일이었다. 이후 9월 28일까지 인민군이 화순 지역을 장악했던 기간에 인민 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인민 위원장은 해방 후 좌익 활동에 가담하다 여순 사건 이후 빨치산으로 지리산에 입산했던 인물이었다.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후퇴 명령을 받은 화순 군당은 화순군 화순읍 만연사(萬淵寺) 아래 동구리를 거쳐 한천면 동산촌으로 옮겼다가 11월 19일 제11사단 20연대의 공격을 받고 말봉산으로 아지트를 옮겼다. 후방 지역 빨치산 토벌 작전을 위해 창설된 11사단[사단장 최덕신]은 1950년 10월 이후 본격적인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듬해 3월 말 최종 토벌기까지 화순 지역 빨치산 토벌 작전을 주도하였다.
백아산에는 조선 노동당 전남 도당 본부와 빨치산 전남 총사령부가 있었다. 초기 토벌 작전은 모후산 지구 토벌 작전으로서 각 지역을 고립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후산 지구, 백아산 지역, 장흥 유치 지구에 대한 합동 토벌 작전으로 전개되었다.
[결과]
1951년 11월에서 1952년 2월 사이에는 미군 폭격기가 백아산 등지에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네이팜탄까지 투하하는 등 대공세를 펼쳤고 빨치산은 큰 타격을 받았다. 1951년 11월 전남 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는 전폭기의 폭격 등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자 광양시 백운산으로 아지트를 옮기고 일부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에도 빨치산 잔여 세력이 화순군 백아면 지서, 백아면 원리 고지와 수리 고지를 수차례 내습하여 국군과 접전을 전개하는 등 충돌이 계속되었으며, 종전 이후 2년이 지난 1955년 3월이 되어서야 경찰은 공비 섬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백아산의 빨치산 활동과 국군의 토벌 작전은 10월 항쟁에서 여순 사건을 거쳐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빨치산의 소멸을 의미했으며, 빨치산 토벌 과정에 군경의 희생은 물론 수많은 민간인까지 피해를 입게 되는 비극을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