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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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濟 武王-新羅善花公主-結婚 |
영어공식명칭 | Marriage of King Mu of Baekje and Princess Seonhwa of Sill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고대/삼국시대/백제 |
집필자 | 최창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12월 20일 -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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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1월 1일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제289호 지정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8월 12일 -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 정병갑에게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1년 -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서동 생가터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
관련 지명 | 왕궁리 유적 왕궁리 오층석탑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
관련 지명 |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
채록지 | 동고도리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서동[무왕]|선화공주 |
모티프 유형 | 혼인|재물 획득|출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
[개설]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은 서동(薯童)이 자신이 만들어 부른 노래 탓에 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하여 후일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武王)[?~641]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은 2011년 8월 12일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정병갑에게서 채록하였다.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은 201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선화공주는 신라 제26대 왕인 진평왕(眞平王)[?~632]의 딸로 절세가인이었다. 백제에 살던 서동이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하기 위하여 신라로 갔다. 그리고 선화공주가 서동과 몰래 만난다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진평왕이 그 소문을 듣고 화를 내며 선화공주를 쫓아냈다. 서동이 쫓겨난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선화공주가 보자기를 풀어 궁에서 가져온 금덩이를 보여 주었다. 서동이 금덩어리를 보고는 자기가 평소 마를 캐던 곳에 선화공주를 데려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금덩이를 보여 주었다. 후일 서동은 뛰어난 능력으로 왕위에 올라 백제의 무왕이 된 후 미륵탑(彌勒塔)[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탑(王宮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쌓았다. 전하는 말로는, 미륵탑은 여자가 쌓고, 왕궁탑은 남자가 쌓았다고 한다. 미륵탑은 여자 장사가 치마에다 바위를 담아 옮겨서 크게 축조하였고, 왕궁탑은 남자가 쌓아 작게 축조하였다고 전하여진다.
[모티프 분석]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결혼」은 ‘혼인’, ‘재물 획득’, ‘출세’ 등이 주요 모티프이다. 가난하게 살던 서동이 꾀로 선화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이다. 결혼을 통하여 아내와 재물과 권력 등의 결핍을 해소하고 출세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