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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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영어음역 | Uisaenghwal |
영어의미역 | Costum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식 |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개설]
의생활은 생활 문화의 한 요소로서 제천 사람이 일상생활이나 의례 시에 착용하였고 지금도 착용하고 있는 복식을 의미한다. 제천 지역의 경우 사계절의 변화가 분명하여 상대적으로 계절에 따라 의복 문화가 발전하였다. 제천 지역의 산간 내륙 마을과 남한강 수변 마을에서는 계절감에 따라 일상복 중심으로 전통 옷을 입었다. 한복을 평상복 중심으로 보면, 양반들은 비단이나 모시와 같은 비교적 좋은 옷감을 이용하였고, 옷치레와 더불어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 반면에 서민들은 무명이나 베를 주재료로 하였고 흰 색의 옷을 주로 입었다.
[특징]
제천 지역의 의생활은 여타의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제천의 기후와 지형의 특색으로 인해 추운 계절이 되면 충청북도 남부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옷을 겹으로 입는 편이다. 제천 지역 의생활의 변화는 근현대의 시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집안에서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에서 서양식의 기성복이 빠른 속도로 각 가정에 퍼져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통 복식에 대한 관념이 곧 예(禮)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전통 복식을 입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생의 전환점에서 행해지는 일생 의례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일상복]
1. 남자 옷
제천 지역 남자는 위에 속적삼과 저고리를, 아래에 속고의에 바지를 입었고, 허리에는 주머니를 찼다. 상의는 겉옷인 저고리와 두루마기가, 하의는 바지가 기본이다. 저고리는 위 몸통을 다 감싸는 것이 보통이며,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사람은 일을 해야 하므로 소매통이 좁게 하여 일하기가 편하게 하였다.
양반은 저고리를 입었으나 일반 사람은 등거리를 입고 팔뚝까지 둘둘 말아 올려 입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솜을 넣어 만든 무명 저고리를 입었다. 바지는 허리 부분까지 올려 요대[허리띠]를 매고, 바지 자락은 먼저 버선을 신고 발목 부분에서 대님을 맸다. 어린이와 일하는 사람[농민·상인·수공업자]은 대님을 하지 않았으며, 주로 행전을 정강이 부분에 찼다. 그리고 농민은 주로 여름철에는 잠방이라는 홑으로 된 옷을 입고 무릎까지 걷어서 입었다. 외출할 때는 두루마기를 착용했다. 두루마기는 저고리 위에 입게 되므로 통이 넓고 소매 쪽으로도 통이 넓게 되어 있었으며, 길이는 보통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발에는 버선을 신고 댓님을 매었는데 양반은 건조한 날에는 가죽신인 태사화(太士靴)를, 진날에는 가죽에 기름을 먹이고 징을 박은 진신을 신었다. 서민들은 건조한 날에는 짚신 또는 미투리를, 진날에는 나막신을 신었다.
2. 여자 옷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다. 저고리는 대체로 길이가 짧아서 가슴을 싸는 정도이며 고름을 맸다. 치마는 속치마를 입은 후에 그 위에 입는데, 허리 위까지 올려 매고 땅에 닿을 정도의 길이였다. 일을 할 때에는 치마 위에 행주치마를 입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을 때에는 양반집 규수는 비단으로 색깔을 넣어 입었지만, 일반적으로 흰색저고리에 검은색 치마나 몸빼[일본식 고쟁이바지]를 많이 입었다.
3. 아기 옷
아기가 태어나면 배냇저고리를 입었다. 배냇저고리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미리 만들어 아이에게 입혔다. 배냇저고리는 깨끗한 융으로 만들었다. 아기 베개는 좁쌀을 속으로 한 베개를 만들어 주었는데 많은 좁쌀처럼 오래 살라는 의미를 가졌다. 아기가 태어나서 만 1년이 되는 첫 탄생일인 돌날에는 아기에게 고운 색동옷을 입혔다.
[의례복]
제천 지역의 대표적인 의례복으로는 혼례복과 상례복을 들 수 있다. 이 또한 일상복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기성품이 되어 대부분 구입하여 입고 있다.
1. 혼례복
전통 사회에서 제천 지역의 혼례복은 신랑과 신부가 혼인식을 치르는 날 입는 옷이었다. 신랑은 관복을 입고 사모를 쓰고 관대를 하고 목화를 신었다. 원래 관복은 당상관직 등 벼슬에 오른 사람이 입는 옷으로, 가슴 부분에 흉배를 수놓는다. 그래서 벼슬에 나가지 못한 일반인들은 관복을 입지 못하였다. 하지만 혼인은 한 사람의 생(生)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관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였다. 신부는 노란색 삼회장저고리, 청색·홍색 비단 치마, 원삼, 족두리, 봉띠, 댕기, 비녀, 연지·곤지 등을 하였다. 예복으로 녹원삼을 주로 입었다. 서민들은 원삼을 만들어 입기가 어려웠던 까닭에 마을에서 만들어 놓은 원삼을 돌려가며 입거나 빌려 입기도 하였다. 민간 혼례복인 원삼은 금박 장식이 없고 소매에 색동이 많았다.
최근 들어 혼례를 서양식으로 하는 추세가 일반적이라 혼례복도 예식장이나 웨딩샵에서 대여해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폐백을 드릴 때 전통 혼례복을 입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상례복
집안에 상(喪)이 발생하면 상주(喪主) 이하 복인들은 모두 상례복으로 입는다. 상복은 보통 같은 고조의 후손인 8촌까지 입었으나 집안에 따라 먼 집안들은 건(巾)과 행전만 하는 예가 많았다. 상복에는 관, 효건(孝巾), 최의(衰衣), 최상(衰裳), 의상(衣裳), 수질(首絰)[머리띠], 요질(腰絰)[허리띠], 교대(絞帶), 상장(喪杖), 신발 등이 있으나, 각기 형편에 따라 입었다. 위의 모든 것을 입는 것을 ‘굴건제복(屈巾祭服)’이라고 부르는데, 친 혈족만 입었다. 사위나 조카들은 요질과 수질을 하지 않는데, 이 상복을 ‘중단’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상주도 중단을 많이 입는다.
제천 지역의 상복은 부모에 따라 하단의 형태를 달리했다. 부친상일 때는 상단 하복을 너불거리게, 모친상일 때는 단을 했다. 결혼 여부에 따라 건 쓰는 것도 달리 했는데, 비록 나이가 많아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아이로 취급하여 건을 씌우지 않고 베를 머리에 덮고 새끼를 둥그렇게 말아 머리에 씌웠다. 상장[지팡이]은 비녀와 마찬가지로 부친상일 때는 대나무, 모친상일 때는 오동나무를 썼다. 최근에는 장례식장을 이용한 경우 남성은 검은색 정장, 여성은 흰색 한복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