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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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安縣 |
이칭/별칭 | 난진아현(難珍阿縣),월량현(月良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76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진안현(鎭安縣)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보면, 현재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월량현(月良縣)이었고,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개정하면서 벽계군(壁谿郡)[지금의 장계면]에 소속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벽계군에는…영현이 둘 있는데 진안현은 본래 백제 난진아현이다[壁谿郡…領縣二 鎭安縣 本百濟難珍阿縣].”라고 하였고,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는 “진안현은 본래 백제 난진아현-달리 월량현이라고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서 장계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도 내속시켰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가 공양왕 3년에는 마령의 감무도 겸임하게 하였다[鎭安縣 本百濟難珍阿縣-一云 月良縣-新羅景德王改今名 爲長溪郡領縣 高麗初來屬 後置監務 恭讓王三年 兼任馬靈].”고 하였다.
[변천]
진안현은 고려 건국 후에는 전주에 소속되어 고을 수령인 감무(監務)가 파견되는 현이 되었는데, 이 감무가 인근의 마령현(馬靈縣)[지금의 마령면·백운면·성수면]까지 관리하게 되면서 진안과 마령이 하나로 연결되는 단초가 제공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진안현은 마령현을 합병하여 현감이 다스리는 고을 체제가 이루어졌다. 이후 진안현은 1895년(고종 32)에 전라북도 관찰사 아래 26군을 두면서 진안군이 되었고, 다시 1914년에 실시된 군현 통폐합에 따라 용담군과 합쳐져 현재의 진안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