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34
한자 外弓里店村陶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점촌길 71[외궁리 56]
시대 고려/고려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성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외궁리 점촌 도요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외궁리 점촌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점촌길 71[외궁리 56]지도보기
성격 가마터|청자 생산 유적|옹기 생산 유적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개설]

성수면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각각 청자와 옹기를 제작한 가마터이다.

[변천]

성수면 외궁리 점촌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초기에 청자 생산이 이루어지고,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점촌이 형성되면서 옹기를 생산하였다.

[위치]

외궁 교차로에서 도통리 방향으로 약 750m 지나면 외궁리 점촌 마을 입구가 나오고, 이곳에서 마을 안쪽으로 약 300m 들어가면 마을 회관이 나온다. 점촌 도요지는 이 마을 회관 뒤편 구릉 일대에 분포한다. 도통리 중평 도요지와는 북동쪽으로 약 500m 거리를 두고 인접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1993년 발표된 「전북 지방 도요지의 연구」에서 유적 및 유물의 양상이 개괄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을 제작하면서 다시 조사된 바 있으며, 2011년에 발표된 「진안 지역 청자 요지의 연구」에서도 외궁리 점촌 도요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1993년 당시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녹청자 요지와 초기 청자 요지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가마는 마을 내 뒷구릉에 3개소의 요지가 분포하였고, 구릉 앞 개울에 집중적으로 퇴적되어 있었다.

2007년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 당시에는 이미 마을 내 뒷구릉에도 많은 민가가 들어서고 계단식으로 경작되어 청자 요지는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개울가 일대에도 포장도로가 들어서는 등 지역의 현상 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져 1993년 당시의 유적 상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유물은 1993년 당시 해무리굽 계열의 초기 청자 편들과 갑발편 등이 채집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2007년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 당시에는 해무리굽 계열의 초기 청자 저부편 1점이 확인되었고 갑발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현황]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민가와 계단식 경작지의 조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었다. 특히 이곳엔 120년 전 점촌이 들어서 옹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고려 시대 초기 청자 가마 유적들이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요지 내에는 고려 시대 초기 청자 갑발편과 옹기 편이 교란되어 흩어져 있다. 외궁리 점촌 도요지에서 채집된 청자는 내저원각이 있고 굽 접지면이 좁은 한국식 해무리굽 완이며 굽 안 바닥에는 ‘十’ 자표시가 그어져 있다. 요도구로는 높이 7~8㎝의 갑발편도 확인되며, 전축 요의 흔적으로 보이는 벽돌도 발견된다.

[의의와 평가]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민가와 계단식 경작지의 조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었으나 한국 초기 청자 발생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의 양상은 유적의 파괴가 심하여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갑발의 형태를 놓고 볼 때 도통리 중평 도요지도통리 양지 도요지에서 보이는 양상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외궁리 점촌 도요지도통리 중평 도요지, 도통리 양지 도요지와 거의 유사한 시기에 맞물리면서 운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벽돌 가마의 흔적이 보이고 녹청자 생산 단계의 가마 유적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할 때,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전축 요에서 토축요 단계로 이행하는 가마 유적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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