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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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麟權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오동리 |
시대 | 근대/개항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정민 |
[정의]
근현대 진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송파(松波). 호조 판서 전극례(全克禮)의 16대손이다.
[활동 사항]
전인권(全麟權)[1890~1968]은 진안군 마령면 오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식이 두터웠으며 어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생전보다 정성을 더하여 시묘 살이를 하였다.
진안 지방 명문인 이병연(李柄淵)·정종엽(鄭鍾燁)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높은 학문을 갈고 닦아 제자가 많았다. 항일 의병 활동을 한 전기홍(全基弘), 이석용(李錫庸)과도 뜻을 같이하여 가산(家産)을 털어 거사 자금을 대는 등 숨어서 후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왜경의 횡포를 배격하는 데 앞장섰으며, 진안 향교의 임원이 되어 여씨향약을 시행하고 공민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등 진안 지방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산묘을 세워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에 김구(金九), 이시영(李始榮) 등이 글을 보내 칭송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국의 유림들이 전인권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금을 모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가전 마을 덕태산 밑에 정려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