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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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葛龍里茂巨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의례 장소 | 갈용리 무거 당산제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무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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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3일 새벽 4시 |
신당/신체 | 당산 할머니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무거 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사.
[개설]
당산제는 마을에서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제의이다. 무거 마을 당산제는 마을 가운데에 있는 당산 할머니라고 부르는 자연석 선돌에서 모신다. 무거 마을에서는 섣달 스무날에 마을 회의에서 제관을 선정하고 제의는 1월 3일 새벽 4시에 30분 경 유교식으로 지내는데 축문과 소지를 한 후 풍물을 울린다. 당산제를 마치면 마을 회관에서 음복한 후 마을 대소사를 논의한다.
[연원 및 변천]
자연석 선돌인 무거 마을 당산 할머니는 예전에 마을 회관 마당에 있었으나 1999년 마을 가운데로 옮겨 모시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당산 할머니를 정성들여 모시는 이유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상여를 만들어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상여가 넘어지면서 선돌이 무너졌고 이후 아이들이 11명이나 죽는 불상사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런 일이 발생한 후로 마을 사람들은 궂은일을 해서 동티가 난 것으로 믿고 매년 당산제를 거행하며 마을 수호신으로 정성껏 모시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무거 마을 제당은 마을 가운데에 당산 할머니라 부르는 자연석 선돌이다. 선돌은 높이 120㎝, 넓이 50㎝, 두께 30㎝의 방형의 자연 입석이다.
[절차]
무거 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새벽 4시 30분에 지낸다. 음력 12월 20일에 마을 회의에서 제관을 1명 선정하면서 당산제가 본격화한다. 제관은 정결한 불교 신자로 선정하는데 제의 일주일 전부터 바깥 출입이 금지되며 대문에는 황토 흙과 금줄이 드리워진다.
제물은 300여 만 원 정도 되는 마을 기금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진안장에서 구입 한다. 돼지머리나 고기, 삼색과실, 삼탕[돼지, 명태, 홍합], 삼채[콩나물, 고사리, 숙주] 등이 준비된다. 제물 진설은 다음과 같다. 맨 앞에 촛불을 두 개 놓고 그 다음 열에 국과 밥을 두 쌍 놓는다. 그 다음 열에 김, 명태포, 돼지탕, 명태탕, 홍합탕, 백설기를 놓는다. 그 다음 열에 콩나물탕, 고사리탕, 장, 무탕, 배추탕을 놓는다. 아래 상에는 대추, 밤, 감, 곶감, 배, 사과, 귤, 소지를 놓고 그 다음 열에 향불과 막걸리를 올린다.
새벽 4시30분 제물을 준비하여 지게에 지고 당산에 갈 때에는 마을에서 깨끗하고 성실한 사람 8명 정도가 함께 간다. 제물은 이장과 제관이 가지고 가며, 나머지 사람은 풍물을 치고 간다. 제당에 가서 제사 음식을 진설한 후 술을 따라 올린다. 재배한 후에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린 후 다시 풍물을 울린다. 그리고 마을 회관으로 와서 음복을 한다. 소지는 마을 전체를 위하여 올린다. 화선지를 태우는데 화선지 재가 타 올라가야 그해 운이 좋다고 믿는다.
[축문]
무거 마을 축문은 임서우에 의하여 제작되었으며 한자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을유 일월 갑자삭 초삼일 병인 유학 ○○○ 무거 부락/ 대표 안경태 외 주민 일동 감소고우/ 당산 지신님 계고 하나이다/ 국사위종 상접철소 제정죽작/ 천황분맥 하초춘작 장비작복 응험증명 비인수종/ 백세불망 비민척식 복유졸영 소속공감 배아약성/ 복강부귀 양양하격 수직혜택 부응수복 건해분장/ 우로시약 사린시곡 도호맹육 화목무적 육축번식/ 혜택조형 참재오환 일시소멸 맹수엽적 팔란군한/ 백세청원 금자전촉 배령전구 용성제목 공골차숙/ 서기흡격 상/ 향
[부대 행사]
예전에는 제의가 끝나면 풍물을 치곤했지만 요즘에는 마을 회관에 모여 동네잔치를 하는 것으로 행사가 끝난다. 보통 제의 날이 동회 날인데 이때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윷놀이를 하고, 당산제 비용을 결산 한다. 그리고 한 해 마을에서 했던 행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일을 계획 한다.
[현황]
무거 마을은 봉화대 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나무골 아래에 자리 잡았다. 봉화대 터가 마을의 주산 역할을 한다. 안산은 국사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줄기이다. 운장산 계곡 갈거 마을과 조포 마을에서 흘러 내려온 두 줄기 물이 합류하여 마을을 통과하여 정자천으로 접어든다.
무거 마을의 형성 시기는 불분명하나 남평 문씨와 밀양 박씨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평 문씨는 살지 않으며 신씨, 밀양 박씨, 나주 임씨 등 각성바지로 구성되어 있다.
무거 마을 서북쪽에 노현(蘆峴)이란 마을 이름으로 처음으로 형성되었으며 ‘노현’이란 명칭은 갈대가 많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신평으로 부르다가 현재 위치로 옮겨와 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이 번성하게 되자 무성하게 자라는 초목에 비유하여 무거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무거 마을에서는 지금도 음력 1월 3일 새벽 선돌에 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