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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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靈水寺靈山會掛佛幀 |
이칭/별칭 | 「석가모니괘축불상」,「영수사 영산회괘불화」,「영수사 괘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542[영구리길 60-12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승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3월 12일 -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55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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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재지정 |
성격 | 불화|탱화 |
제작시기/일시 | 1653년 |
작가 | 명옥(明玉)|소읍(小揖)|현욱(玄旭)|법능(法能) |
서체/기법 | 모시에 채색 |
소장처 | 영수사 |
소장처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542[영구리길 60-125]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화.
[개설]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 1977년 12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1호로 승격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은 17세기 영산회상도의 양식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괘불화로 길이 835.5㎝, 너비 579㎝의 저포(苧布)[삼베] 바탕에 채색한 불화로 삼베 17폭을 가로로 연결하였다. 괘불은 중앙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빼곡하게 둘러싼 구도로서, 본존 대좌의 전면에 표현된 비구형 청문자(聽聞者)를 중심으로 화면은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된다.
상단에는 부처와 일행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설법을 듣는 신도들이 밝은 색상에 유려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먼저 상단부는 본존을 중심으로 18보살, 가섭(迦葉), 아난(阿難), 16나한, 범, 제석천(帝釋天), 사천왕(四天王), 팔금강(八金剛), 용왕·용녀, 신중(神衆), 비천(飛天), 타방불(他方佛), 청문자, 청중 등 약 140위의 존상을 화면 가득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사리불(舍利弗)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무리로 추정되는 대중이 운집하여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의 중앙에 위치한 석가모니는 높은 대좌 위에서 키형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주위의 다른 인물상에 비해 상당히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이에 비해 주위의 보살상, 제자상, 사천왕, 8부중 등 많은 성중(聖衆)들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다. 불상 대좌 앞에는 부처의 제자인 사리불이 등을 보인 채 꿇어앉아 법문을 청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많은 대중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단의 여러 성중의 배치는 틀에 박힌 좌우 대칭의 구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다. 불화의 선은 철선묘(鐵線描)로 그려졌고, 전체적으로 일정한 굵기의 선을 사용했다. 채색은 홍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녹색, 청색, 황토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옅게 써서 복잡하고 화려한 문양 대신 밝고 투명한 색조로 화면을 차분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특징]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의 원래 이름은 「석가모니괘축불상」이며,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괘불로 17세기 영산회상도의 양식을 잘 보여 준다. 또한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영산회상도 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불화로 손꼽힌다.
[의의와 평가]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은 한국에 남아 있는 100여 점의 괘불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인 1653년(효종 4)에 조성되었으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전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괘불화이다. 이 괘불은 하단부에 붙은 묵기에 ‘순치(順治) 10년 7월’ 이라고 명기되어 있어 제작 연대가 1653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괘불을 그린 비구화상 중 명옥과 법능은 1658년에 조성된 안성 청룡사의 괘불 불사에도 참여했는데, 이런 까닭으로 두 괘불은 비슷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