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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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李英男墓所 |
이칭/별칭 | 이영남 장군 묘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산 88-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승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8월 1일 - 진천 이영남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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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 이영남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묘소 |
건립시기/일시 | 1598년 |
관련인물 | 이영남 |
높이 | 약 240㎝ |
지름 | 약 600㎝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산 88-4 |
소유자 | 양성이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개설]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전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이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한 뒤 조방장으로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였으며, 1598년 가리포첨사겸조방장(加里浦僉使兼助防長)으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고향인 덕산읍 기전리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렀다. 1605년 무훈원종일등공신에 봉해졌고, 숙종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위치]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 증평 방향으로 달리다 오갑삼거리에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좌회전하여 다시 덕산읍 방향으로 간다. 구산리 마을에 다다르면 오른쪽으로 덕산읍 기전리 기지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진천 이영남 묘소는 기지마을 갈현산 아래 위치한다.
[형태]
묘소는 원형의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로써 둘레를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조성하였다. 묘소 앞쪽에 상석 및 계체석, 정면 좌·우측으로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있으며, 우측에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1983년에 세워졌다. 이 석물들의 상태는 양호하나 근래에 건립·조성된 것이다. 좌측에는 평소 이영남 장군이 아끼던 말의 무덤인 용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진천 이영남 묘소 상단으로는 이영남 장군의 부모인 이사종과 광주진씨 묘소 쌍분 각 1기 및 묘비와 조부 이극인의 묘소 및 묘비 1기가 위치하고 있다.
[금석문]
묘소 앞의 비석 전면에는 ‘임진충신양성이영남장군사적비(壬辰忠臣陽城李英南將軍史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묘소에 있는 이영남 장군 사적비는 1983년 10월 9일 순국 385주년을 맞아 건립된 것이다. 진천 이영남 묘소는 2008년 8월 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양성이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비록 진천 이영남 묘소가 조선시대 묘소의 일반적 형태로 최근에 새로 조성하였으나,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을 통해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한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