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354 |
---|---|
한자 | 琴閑洞天祭 |
이칭/별칭 | 금한동 천신제,금한이 천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부락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재원 |
성격 | 민간신앙|마을 제사 |
---|---|
의례시기/일시 |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 |
의례장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악세봉 산허리 천제당 |
신당/신체 | 천제당|큰 참나무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금한동 천제는 초평면 금곡리 악세봉 산허리의 천제단(天祭壇)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하늘의 신께 드리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금한동 천신제, 금한이 천제라고도 부른다. 300여 년 전부터 마을 고유의 의식으로 매년 정월 초에 봉행했던 금한동 천제는 주민들이 고령화된 데다 현대화에 밀려 1992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17년만인 2009년에 다시 재현되었다.
천제란 하늘의 신, 즉 천신(天神)께 드리는 제사이다. 천신이란 하늘 자체를 신격화하거나 아니면 하늘이 있다고 믿는 초인적인 인격체를 믿는 데서 생겨난 개념이다. 천신의 유래는 고조선, 부여 및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토착신앙인데, 삼신(三神)[환인, 환웅, 단군] 숭배사상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천에서 행해지고 있는 금한동 천제는 일반적인 산신제와는 그 격식이 다르다.
천제를 지내기 위한 신당(神堂)은 없으며 신체(神體)로 하는 큰 참나무 근처에 초막을 짓고 제사를 준비하였다. 또한 제를 지내기 위해 제단도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살아 있는 자연목을 채취하여 제사상을 만들고, 그 위에 제물을 놓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흔히 토속신앙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잡신(雜神)을 배제하는 유교적 의식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는 제례이다.
[연원 및 변천]
금한동 천제는 약 300여 년 전부터 수년 전까지 마을 북쪽에 있는 악세봉에 천제단을 마련하고 3년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길일을 택하여 거행해 왔다. 특이한 것은 자연적으로 자란 커다란 신목(神木)을 신위(神位)로 모시고 지내는 제사여서 돌로 된 천제단을 쌓고 드렸던 몇몇 천제와는 구별된다.
[신당/신체의 형태]
천제당(天祭堂)이라고 해서 무슨 당집을 짓고 그 건물 안에서 제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살아 있는 큰 참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그 앞에 돌을 30㎝ 가량의 높이로 야트막하게 쌓는다. 다음에 제상을 설치할 만큼 넉넉한 넓이로 깨끗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자연목으로 된 제사상을 마련해 놓고 사용하고 있다.
[절차]
천제를 드리기 3일 전에 동리 출입구마다 금줄을 둘러쳐 잡인의 출입을 막았다. 금줄은 다른 산신제와는 다르게 짚으로만 꼬는 것이 아니라 문종이를 넣어 꼰 왼새끼를 사용하였다.
천제를 지내기 위한 제관은 삼일 전에 부정을 타지 않은 정갈한 사람으로 7명을 뽑는다. 선출된 제관은 삼헌관(三獻官) 3명, 축관(祝官), 집사(執事), 알자(謁者)[헌관을 인도하면서 돕는 이], 사준(司罇)[술을 담당하는 이] 등이다. 제관들은 삼일 전에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갖춘 후 제사 준비를 하였으며, 제관 중 두 사람은 천제당 근처에서 제주(祭酒)를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하였다.
제사를 지내기 전 밤 12시 30분경에는 모닥불을 피워 의식의 시작을 알려 주면 각 가정에서도 천제에 동참하였다. 천제를 지내는 순서는 ①설찬(設饌)→ ②분향강신(焚香降神)→ ③헌작(獻爵)[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④독축(讀祝)→ ⑤재배(再拜)→ ⑥소축(燒祝)→ ⑦철찬(撤饌) 등으로 이루어진다.
[축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박준호 박사가 국역한 축문은 다음과 같다.
‘이해의 차례는 병술년 정월 초하루의 일진(日辰)이 정미 14일 경신일에/ 유학(幼學)[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 ○○○은/ 감히 산천과 천지의 신명께 분명히 고하나이다./ 생각건대 이 땅은 충청도의 구역이니/ 북쪽으로는 갈령[갈티고개]을 끌어안았고/ 남쪽으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용강[큰 언덕: 두타산]이 있습니다./ 그 속 한 골짜기에 마을을 이루고 90여 호가 살고 있는데,/ 가난하게 사는 초라한 오두막집들이라/ 엉성한 울타리와 낮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주민들이 비록 무지 몽매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도리는 지니고 있으며/ 타고난 천성이 크게 고르기에 자연의 혜택을 입고 삽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먹고 입는 것은 누가 주재(主宰)하는 것입니까?/ 저희들을 낳고 저희들을 길러주고 저희들을 덮어주고 저희들을 실어주는 하늘과 땅입니다./ 천지군부(天地君父)의 큰 은혜를 받았으나/ 지금 병마가 생겨서 저희 고장에까지 뻗혀 와/ 먼 곳부터 가까운 곳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에 서민들은 근심스럽고 걱정스러워서/ 마음을 졸이고 애간장을 태우니/ 음식을 먹어도 달지가 않고 잠자리에 들어도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신명께 제사를 지내고/ 삼가 괴로움을 하소연하며 이에 주효(酒肴)[술과 안주]를 받들어 올립니다./ 높고 아득한 하늘은 저희들의 부모이시니/ 바라옵건대 저희들을 보살펴주셔서 재앙이 없도록 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어리석은 정성을 어여삐 여기시고/ 저희들의 간절한 기원을 들어주신 나머지 명철한 명령을 내리시고/ 혁혁한 위엄을 드날리심으로써 악질(惡疾)을 몰아내시고/ 상서롭지 않은 일을 막아주소서./ 병마가 없도록 온 산천을 깨끗이 소제하시고/ 저희들의 지역을 평안케 하여 주시고 장수하는 고장에 화평한 바람이 일고/ 백성들과 동식물이 길이 번창하게 하여 주소서./ 원하옵건대 신령님께옵서는 흠향(歆饗)[제사의 예를 받음] 하시옵소서[維歲次 丙戌正月 丁未朔十四日 庚申 幼學 ○○○ 敢昭告于 山川神祇/ 惟此土地 西湖之彊 北控葛嶺 南距龍崗 一壑成村 九十家庄 蔀屋衡門 疎籬短墻/ 氓雖蚩蚩 猶秉彝常 受稟洪勻 沾被露霜 顧我倚趨 是孰主張 生我養我 覆卬載卬/ 恐有癘氣 延我東鄕 自遠及近 人多死亡 黎元憂悶 勞心焦腸 食不甘味 寢不安床/ 闔里齊聲 陳禋薦香 用伸虔告 崇酒于觴 悠悠昊天 曰我爺孃 庶幾監臨 俾無愆殃/ 憐我愚悃 聽我勤禳 明命是降 赫威斯揚 驅除虐癘 呵禁不祥 廓淸山川 安妥吾方/ 壽域和風 民物永昌 尙饗]’
[부대행사]
천제를 지내고 난 후 특별한 행사는 없다. 다만 제사 당일 먼동이 트면 주민 모두가 초막을 해체하고 산에서 제물을 가지고 내려와 70세 이상 노인들께 봉송을 싸서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나머지 제물과 술로 음복례(飮福禮)를 하며, 앞으로의 마을일들을 상의하기도 하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기도 하였다.
[현황]
금한동 천제는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주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행사로 봉행하였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의 변화, 준비의 어려움, 실시상의 문제, 종교적 이해관계 등이 얽혀 그 동안 중단된 것을 2009년에 향토사학자인 전 동국대학교 김용기 교수가 주축이 되어 문화행사로 재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