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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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영어의미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승철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회사, 학교 등 여러 사회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국회 의원 등 국가 기관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부와 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대의 민주주의 통치 구조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서 국가 권력의 창출과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조직 원리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 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 선거 등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공직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 선거]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 국회는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 간선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을 성안하여 같은 해 7월 12일에 제헌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같은 해 7월 17일의 제헌 헌법 공포에 이어 7월 20일 국회에서 실시된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적 의원 198명중 196명의 의원이 참가하여 이승만 180표, 김구 13표, 안재홍 2표, 무효 1표로 이승만 후보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52년 8월 5일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직선제가 처음 도입되었으며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5,238,769표[74.6%]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진천군에서는 22,367표[86.6%]를 획득했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는 5,046,437표[70%]를 획득한 이승만 후보가 당선되었다. 진천군은 95.9%의 투표율[전국 투표율 94.4%]을 보인 가운데 조봉암 후보 3,164표[15.1%], 이승만 후보 17,852표[84.9%]의 지지를 보냈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 기간 중 조병옥 후보의 사망으로 이승만 후보가 단일 후보로 치러져 유효 투표 총수의 88.7%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진천군의 투표율은 97.6%였으며, 유효 득표는 30,884표였다.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자유당의 이승만이 당선되었으나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에 이은 4월 29일의 국회 결의에 의해 무효 처리되었다. 이후 내각책임제로의 개헌과 더불어 1960년 8월 12일 윤보선이 국회 간선으로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제5대 대통령 선거는 5·16군사정변 후의 개헌을 통하여 다시 직선제로 전환하여 1963년 10월 15일에 실시되었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46.6%를 얻어 당선되었다. 진천군의 경우 총 38,381명이 참가하여 87.2%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10,584표,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가 15,184표를 얻었다.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7년 5월 3일 실시되었다. 6명의 후보자가 최종 경쟁한 가운데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되었으며, 그 결과 박정희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51.5%를 얻어 당선되었다. 진천군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13,424표, 윤보선 후보가 15,018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는 5명의 후보가 선거전을 벌였으며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 간의 각축으로 진행된 결과, 박정희 후보가 6,342,828표, 김대중 후보가 5,395,900표를 얻었다. 진천군은 36,163명의 선거인 중 30,515명이 투표해 박정희 후보 14,418표, 김대중 후보 13,847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제8대·제9대·제10대·제11대 대통령 선거는 유신 헌법 하에서 간선제로 실시되었다. 제8대 대통령 선거는 1972년 12월 22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되었으며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 7월 6일의 제9대 대통령 선거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되었으며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1979년 10·26사태 후 시행된 1979년 12월 6일의 제10대 대통령 선거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되었으며 최규하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물러나고 같은 달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된 제1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은 자신의 주도로 만들어진 제5공화국 헌법 하에 1981년 2월 25일 대통령 선거인단 간선으로 실시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총 5,277명의 선거인단으로부터 90.2%를 득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선거를 위해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는 1981년 2월 11일 실시되었다.
6·29선언에 따라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됨으로써 16년 만에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12월 16일 실시되어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유효 투표율 36.6%를 얻어 당선되었다. 92.1%의 투표율[전국 투표율 89.2%]을 기록한 진천군에서 36,927명중 34,015명이 투표에 참가했으며 노태우 후보 15,759표[47.7%],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 9,718표[29.4%],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 3,671표[11.1%]를 각각 획득하였다.
1992년 12월 18일의 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는데, 진천군에서는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9,840표[32.4%],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8,954표[29.5%],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가 8,193표[27.0%]를 각각 획득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40.3%를 획득해 38.7%를 얻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2년 12월 19일의 제16대 대통령 선거에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1201만 4277표를 얻어 48.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전국 투표율이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저인 63%였으며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1149만 2389표를 얻어 득표율 48.7%로 당선되었다.
[국회 의원 선거]
진천군에서는 모두 18번의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 5월 10일 한국에서 처음 제헌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진천군에서는 한국국민당, 무소속 등 4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다. 총 25,829명이 투표에 참가했으며 한국국민당의 송필만 후보가 17,676표, 박찬희 후보가 4,925표, 무소속의 박노열 후보가 3,228표를 각각 획득했으며 한국국민당의 송필만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50년 4월 10일 제정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의하여 임기 4년의 단원제 국회 의원 선거로 1950년 5월 30일 실시되었다. 진천군에서는 24,888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무소속의 이충환 후보 6,488표[26.1%], 무소속의 김동휘 후보 3,960표[15.9%], 민주국민당의 송필만 후보가 4,324표[17.4%]를 얻어 무소속의 이충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충환 후보는 이후에도 제3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10,854표[42.3%]를 얻어 5,648표[22.0%]를 얻은 박찬희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정운갑 후보가 양자 대결을 하였는데 이충환 후보는 11,314표[38.2%]를 얻는데 반해 정운갑 후보가 18,282표[61.8%]를 얻어 무난히 당선되었다. 제5대 민의원 및 초대 참의원 동시 선거에서 민의원 후보로 다시 2명의 후보가 격돌해 이충환 후보가 17,783표[53.6%]를 얻어 당선되었다.
5·16군사정변 후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지역구와 전국구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비례 대표제를 병용하게 되었고, 후보자는 정당 추천제를 절대 조건으로 하여 무소속의 출마를 금지시켰다.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6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민정당의 이충환 후보가 9,580표[23.7%]를 얻어 정운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5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다선 의원인 이충환 후보를 여유 있게 물리친 민주공화당의 오원선 후보가 17,137표[52.6%]를 얻어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실시된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에서는 5명의 후보가 출마해 민주공화당의 이정석 후보 11,927표, 국민당의 김진백 후보 224표, 대중당의 정인소 후보 163표, 민중당의 강진옥 후보가 635표를 얻었으나 같은 선거구인 음성 지역에서 다량 득표하여 결국 민주공화당의 이정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제9대 국회 의원 선거는 1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뀌어 실시되었는데, 진천군은 괴산군, 음성군과 함께 충청북도 제4선거구로 조정 결정되었다. 진천군이 속한 충청북도 제4선거구의 선거에서는 4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민주공화당의 김완태 후보가 8,422표[30.1%], 신민당의 이충환 후보가 15,247표[54.4%]를 얻어 각각 당선되었다.
1978년 12월 12일 중선거구제로 실시된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오용운 후보가 16,5050표[53.2%], 이충환 후보가 10,611표[34.2%]를 얻어 당선되었다. 1981년 3월 25일 실시된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4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한국국민당의 김완태 후보가 7,205표[24.3%], 민주정의당의 안갑준 후보가 10,348표[34.9%]를 얻어 2명이 각각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6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는데 민주정의당의 안갑준 후보가 10,348표[34.9%], 한국국민당의 김완태 후보가 7,205표[24.3%]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6공화국 출범 후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는데, 진천군은 음성군과 함께 또 다시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다. 선거에서는 3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민정당의 김완태 후보가 8,571표[28.5%], 공화당의 이재철 후보가 16,414표[53.5%], 무소속의 허탁 후보가 5,597표(18.3%]를 얻었으나 음성군과 합산하여 민정당의 김완태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에서는 민주자유당 민태구 후보가 10,733표[36.5%], 국민당의 정종택 후보 11,836표[40.3%]로 민태구 후보가 뒤졌으나 음성군에서 앞서 당선되었다. 1996년 4월 11일 실시된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의 경우 신한국당의 민태구 후보 5,222표, 국민회의의 박병남 후보 1,555표, 민주당의 구자웅 후보 999표, 자민련의 정우택 후보 1,893표를 각각 획득했으나 진천군·음성군 선거구에서 자민련의 정우택 후보가 총 33,771표, 48.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진천군·음성군·괴산군이 한 선거구로 조정이 되었으며 자민련의 정우택 후보가 총 36,505표[36.2%]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진천군·음성군·괴산군·증평군이 한 선거구로 조정이 되었으며 열린우리당의 김종률 후보가 42617표[47.6%]를 획득하여 자민련의 정우택 후보를 제치고 초선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의 김종률 후보가 32,608표[38.8%], 한나라당의 김경회 후보가 29,581표[35.2%], 친박연대의 김종호 후보가 11,388표[13.6%], 자유선진당의 송석우 후보가 8,659표[10.3%]를 각각 획득했으며 통합민주당의 김종률 후보가 당선되었다.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는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1995년, 1998년, 2002년, 2006년 등 4번에 걸쳐 실시되었다. 제1대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는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되었다. 충청북도에서는 자민련 주병덕 후보가 250,105표[36.4%]를 얻어 168,209표[24.5%]를 얻은 민주당의 이용희 후보를 앞서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대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주병덕 후보가 157,459표[25.9%]를 얻었고 자민련의 이원종 후보가 451,533표[74.1%]를 득표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전국 투표율은 48.9%를 보인 반면 진천군은 62.1%를 기록했다. 이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이원종 후보가 343,546표[58.60%], 자민련의 구천서 후보가 196,253표[33.48%]로 이원종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는데, 진천군에서는 이원종 후보가 12,185표[46.4%], 구천서 후보가 11,845표[45.1%], 무소속의 장한량 후보가 2,213표[8.4%]를 각각 획득하였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대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 정우택 한나라당 후보가 391,157표, 열린우리당의 한범덕 후보가 185,426표를 획득하여 정우택 후보가 한범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진천군에서는 한범덕 후보가 5,582표, 정우택 후보가 20,081표, 배창호 후보가 1,504표, 조병세 후보가 428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김영환 후보가 10,278표[34.3%]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자민련의 김경회 후보가 11162표[40.1%]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노태근 후보가 5,488표[20,6%], 민주당의 유영훈 후보가 8,861표[33,3%], 자민련의 김경회 후보가 12,241표[46.0%]를 득표해 김경회 후보가 2선으로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유영훈 후보가 13,152표, 한나라당의 김경회 후보가 12,334표, 남명수 후보가 2,102표를 획득하였으며 열린우리당의 유영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
광역 의원 선거는 5·16군사정변 이전에 3차례, 지방 자치가 부활한 후 5차례 치러졌다. 초대 도의원 선거는 1952년 5월 10일 실시되었는데, 진천군에서는 이재범과 노달선이 당선되었다. 1956년 8월 13일 실시된 제2대 도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의 경우 류희열과 김진목이 당선되었다. 1960년 12월 12일 실시된 제3대 도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의 경우 이정의와 류희열이 당선 되었는데 류희열의 사망으로 이인택이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30여 년 만의 지방자치제 부활에 따라 1991년 6월 20일 실시된 제1대 광역 의원 선거에서 진천군에서는 2명의 광역 의원을 선출했는데, 제1선거구[진천읍·문백면·백곡면]에서는 민자당의 김경회 후보가 5,405표, 김주백 후보가 2,907표, 무소속의 이내현 후보가 1,351표, 무소속의 한상문 후보가 4,335표를 득표해 김경회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2선거구[덕산면·초평면·이월면·광혜원면]에서는 민자당의 박일정 후보가 4,600표, 민주당의 최귀득 후보가 1,684표, 민주당의 유영훈 후보가 4,869표, 무소속의 김효진 후보가 1,293표를 득표해 유영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2년의 제4대 광역 의원 선거에서는 제1선거구[진천읍·문백면·백곡면]에서는 한나라당의 장주식 후보가 7,146표, 자민련의 박양규 후보가 6,514표를 득표해 장주식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2선거구[덕산면·초평면·이월면·광혜원면]에서는 민주당의 조평희 후보가 6,038표, 자민련의 송은섭 후보가 6,073표를 득표해 송은섭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의 제5대 광역 의원 선거에서도 2명의 한나라당 후보가 모두 당선되었는데, 제1선거구에서는 8,853표를 획득한 장주식 후보가, 제2선거구에서는 4,646표를 획득한 송은섭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기초 의원 선거]
기초 의원 선거 역시 모두 5번 치러졌다. 지방 자치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선거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1991년 3월 26일 실시된 제1대 기초 의회 선거는 7개 선거구에서 8명의 군 의원을 선출토록 규정되어 입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18명이 출마하여 평균 경합 비율이 2.2대 1로 나타났다. 진천읍에서는 이문구·김창수 후보가, 문백면은 이동우 후보가, 백곡면은 차영철 후보가, 덕산면은 조평희 후보가, 초평면은 정용기 후보가, 이월면은 송은섭 후보가, 만승면은 김명제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1998년 제3대 기초 의회 선거에서는 진천읍의 경우 김철래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문백면은 이동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백곡면은 이영석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사망으로 김종석 후보가 보궐 선거로 당선되었다. 덕산면은 조평희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도의원 보궐 선거 출마로 정광섭 후보가 군 의원 보궐 선거로 당선되었다. 초평면은 정용기 후보가, 이월면은 송은섭 후보가, 만승면은 장수동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2년 제4대 기초 의회 선거는 진천읍에서는 남명수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문백면은 유재봉 후보가, 백곡면은 양진한 후보가, 덕산면은 정광섭 후보가, 초평면은 정용기 후보가, 이월면은 오봉석 후보가, 광혜원면은 김덕규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6년 제5대 기초 의원 선거에서는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뀌었으며, 의원의 유급제화 도입, 의원 정수 축소, 정당 공천제와 비례 대표 제도 도입 등 많은 변화가 있는 가운데 실시되었다. 진천군에서는 2개의 지역구에서 6명의 지역구 의원이 선출되었다.
가 선거구인 진천읍·문백면·백곡면에서는 신창섭 후보가 2,749표, 김동구 후보가 2,482표, 박양규 후보가 2,374표를 획득하여 유재봉, 김용묵, 박종학, 양진한, 유순상, 유재석, 이호주, 황창원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나 선거구인 덕산면·초평면·이월면·광혜원면에서는 윤근량 후보가 2,028표, 정광섭 후보가 1,841표, 오봉석 후보가 1,622표를 획득하여 이면우, 임충섭, 김덕규, 이강수, 김기형, 박호정, 신동일, 장수동, 조승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비례 대표로는 한나라당의 이완식 후보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