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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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林學校 |
이칭/별칭 | 안동학교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최판근 |
성격 |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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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성내면 4동[현 중앙광장 부근-중앙동] |
설립연도/일시 | 1907년 4월 15일 |
폐교연도/일시 | 1929년 |
설립자 | 거열휴 |
교장 | 거열휴[초대교장] |
학생수(남) | 총 21명[1907년 개교 당시]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에 있었던 교육 기관.
[설립경위]
1907년 4월 15일 기독교신자 자녀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거열휴, 박성애, 강주식, 안헌, 서윤보, 김경숙, 이영숙 등이 주축이 되어 진주군 성내면 4동[현 중앙동 중앙광장 부근]에 안동학교(安東學校)를 설립하였다.
[변천]
개교 당시 교과목은 성경, 국어, 지리, 역사, 산술, 한문, 습자, 체조, 창가, 영어였다. 1909년 8월 31일 안동학교와 정숙여학교를 병합하여 사립 광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1929년 한국 교회와 외국선교부와의 마찰로 인해 폐교되었다.
[관련 활동사항]
1919년 9월 광림학교의 교사였던 강우석, 김정도, 여병섭 등이 비밀조직단체인 혈성단(血成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30일에 해체(解體)되었다.
1920년 7월 5일 광림학교와 진주공립농업학교, 제1,2공립보통학교 학생 연합으로 덕(德)·체(體)·지(智)·육(育)의 연마와 친목을 위하여 3,400여 명이 모여 학생대회창립총회(學生大會創立總會)를 개최하였으나, 경찰당국의 해산 명령을 받았고 관련 문서를 압수당했다.
[학생현황]
1907년 개교 당시 학생 수는 21명이었다.
[교직원 현황]
1907년 초대교장은 설립자인 거열휴 목사였다. 거열휴 목사 외에 시넬리 선교사가 교사로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림(士林)이 많았던 진주에 광림학교가 세워지면서 새로운 서양문물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진주 지역의 여러 학교와 연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특히 교사들의 혈성단(血成團) 조직은 진주의 민족정신이 선비들의 구국운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