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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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將臺址 |
영어음역 | Dongjangdae Teo |
영어의미역 | Dongjangdae Pavilion Site |
이칭/별칭 | 대변루(待變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진주성 바깥 성벽에 위치했던 동쪽 누각.
[개설]
동장대는 조선시대 진주성에 설치됐던 4개의 장대 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동쪽 누각을 말한다.
[위치]
지금의 중앙사거리와 중소기업은행 진주지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변천]
동장대는 진주성 외성벽의 신북문과 동문 사이에 위치해 있던 관계로 가장 치열한 접전 장소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왜군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광해군 때 진주병사 남이흥이 부서진 동장대를 고쳐 세웠고 이후 진주성의 4대 장대 중의 하나로 수백 년 동안 존속해 왔다.
그러다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앞으로 있을 망국을 예감한 듯 하룻밤 사이에 자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동장대가 무너지자 일제는 철거비용을 줄이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양쪽의 성벽마저 철거한 뒤 이곳에 신시가지를 만들었다. 일제는 동장대 터에 식산은행 진주지점과 일본인 지점장의 사택을 세웠으며, 1939년에는 희망찬 식민통치를 염원하는 뜻으로 이 일대를 ‘일출정(日出町)’이라고 이름지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로 목조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수원유수(水原留守)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를 지낸 서영보(徐榮輔)가 썼다.
[현황]
진주사람들은 사라진 동장대와 동쪽 성벽을 잊지 않기 위해 ‘장대동(將臺洞)’ 또는 ‘동성동(東城洞)’이라고 이름을 고쳐 짓고, 오늘날까지도 그 동명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