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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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生光 |
영어음역 | Park Saenggwang |
이칭/별칭 | 우당(又堂),내고(乃古),그대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수현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화가.
[개설]
내고 박생광은 말년 팔순의 나이에 채색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진주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한국 화가이다.
[학력]
박생광은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나왔다. 1920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京都]에서 다치가와미술학원[입천산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校]에 입학하여 신일본화를 공부했다.
[경력]
일본 유학 시절인 1923년에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던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鮮展)’]에서 처음 입선하였다.
광복 후 진주에서 개최되었던 백양회(白陽會) 창립전에 참가하였고, 1967년에는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하기도 하였다.
[활동사항]
박생광은 1929년부터 일본의 명랑미술전, 신미술인협회전 등 여러 미술전에 출품하였으며, 1940부터 1944년까지는 일본미술원전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직전에 귀국하여 다솔사에 출입하였으며, 광복 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청동다방을 운영하면서 자택을 문화의 중심지로 활용하였다. 당시 진주지역 예술문화계의 중심인물로서 1949년에는 영남예술제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한국전쟁 후에도 진주에서 다방을 경영하며 백양회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진주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68년에 상경하였다.
1974년에는 다시 도일하여 일본미술원전의 원우가 되었고, 이듬해 세 차례의 개인전을 도쿄[東京]에서 개최했다. 1977년 서울 진화랑에서 연 귀국전은 왜색풍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1981년 백상기념관 개인전을 통해 독창적인 채색 한국 화가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 경주 여행과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으며, 1984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개최된 한국미술 특별전에 초대 출품하였다.
그 외 1973년에 개최된 ‘한국현대작가 100인전’, 1974년에 개최된 ‘한국원로작가 수작전’과 1976년에 개최된 ‘한국현대동양화대전’, 1984년에 개최된 ‘현대미술 초대전’, 그리고 1985년에는 ‘한국미의 원초적 형상전’에 출품하였다.
[작품]
대표작으로는 「월벽」(1958), 「밤의 매화」(1976), 「무당」(1981), 「무속」(1983)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는 경상남도 문화상, 그리고 1881년에는 제7회 중앙미술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5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4년에는 내고 박생광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20주기를 맞아 서울, 수원, 창원, 진주, 부산에서 회고전으로 ‘박생광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의의와 평가]
1970년대 일본 체류 시절 채색을 절제하고 그린 박생광의 작품들을 통해 신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은 정교한 배치와 색면분할적 화면을 엿볼 수 있는데, 1980년대에 새 안료기법을 개발하며 자신만의 채색화풍을 성취하기까지 복잡한 내면적 고뇌와 숱한 암중모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생광은 한때의 왜색이라는 비난을 딛고 말년에 한국의 역사 및 민화, 무속화, 그리고 불화에 기초하여 한국 채색화 전통의 현대화를 이루어낸 화가로 평가된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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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 1) 상훈 제7회 중앙미술대상|은광문화훈장 ->상훈 제7회 중앙미술대상|은관문화훈장 2)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경도(京都)]에서 다치가와미술학원[입천산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京都]에서 다치가와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3)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校)]에 입학하여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校]에 입학하여 4) 1923년에 선전(鮮展: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약칭)에서 ->1923년에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던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鮮展)’]에서 5) 한국전쟁(6·25전쟁) 후에도 ->한국전쟁 후에도 6) 세 차례의 개인전을 도쿄[東京(동경)]에서 개최했다 ->세 차례의 개인전을 도쿄[東京]에서 개최했다 7) 대표작으로는 「월벽」(1958), 「밤의 매화」(1976년), 「무당」(1981), 「무속」(1983)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월벽」(1958), 「밤의 매화」(1976), 「무당」(1981), 「무속」(1983)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