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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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牧人 |
영어음역 | Son Mokin |
이칭/별칭 | 손득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대중가요 작곡가.
[개설]
1913년 4월 23일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일본에 건너가 작곡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평생 작곡생활과 출판 업무에 종사한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 작곡가로서 본명은 손득렬이다. 1999년 1월 9일에 8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학력]
경신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3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활동사항]
1932년 OK레코드사의 전속작곡가로서 작곡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36년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 전속작곡가가 되었다. 1940년에 손목인악단을 조직하였으며, 1964년 음악저작권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하였다.
일본에서도 잠시 활약을 하였는데, 1955년에는 일본 빅터레코드 전속작곡가로, 1975년에는 일본 데이지쿠레코드사 전속작곡가로 일했다.
1987년에는 손목인음악센터를 설립하여 대표가 되었고, 1989년 한국가요작가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하였다. 1990년에는 출판 사업에도 진출하여 도서출판 한국문화 회장이 되었고, 1993년 한중문화교류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말년에는 음악저작권협회 고문과 한국가요작가협회 명예회장으로 일했다.
[작품]
1934년에는 「타향살이」를 작곡하였으며, 1945년에는「목포의 눈물」을 작곡하여 전국민의 애창곡으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짝사랑」, 「아빠의 청춘」, 「사랑의 기로」 등 수많은 대중가요를 작곡했다.
[상훈과 추모]
1987년에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타향살이」와 「목포의 눈물」 등은 작곡 후 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노래로, 손목인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 대중가요의 선구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