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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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師範舊寮 |
영어의미역 | Old Dormitory, Jinju School of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진주사범학교 기숙사.
[개설]
사범학생들을 충실한 식민지 초등교육자 또는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갓 입학한 사범학교 1학년생들을 의무적으로 강제 수용해 군대식 합숙생활을 시킨 수정동의 임시기숙사이다.
[설립목적]
충실한 일본의 신민과 교육자가 되기 위한 황민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설립경위]
수정동 구료건물은 원래 1939년 7월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당한 미션계 여자초등학교인 시원여학교 목조교사인데 일제가 이 교사를 몰수해 진주사범 기숙사로 사용하면서 용도변경된 것이다. 1940년 4월 조선 총독부의 관립 진주사범학교가 개교되면서 신입생들만을 전원 수용하는 ‘구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변천]
일제가 패망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직후 폐쇄되었으나 미군정 때 진주사범학교 전체가 미군 주둔지로 점령되면서 학생들이 신안동 기숙사(신료)를 사용할 수 없어 다시 수정동 구료를 기숙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렸다.
[주요사업과 업무]
당시 진주사범의 1학년생 대부분을 강제 수용하여 정신훈련과 집단훈련이란 명목으로 혹독한 규율 속에서 군대식 기숙사생활을 강요하여 충실한 일본 천황의 신민과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현황]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주택가로 변모하여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직]
원래 2층의 목조건물이었는데, 당시 2층 교실 4개를 개조하여 1~5호실을 만들고 1층 교실 4개도 개조하여 6~9호실, 사감실, 정양실(이른바 정신수련장)을 만들었다. 방의 크기에 따라 학생들을 11~14명 씩 배치해 개교 당시의 심상과 1학년생 백 50명 중 백 10명을 수용했다. 또한 조선인 학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소수의 일본인 학생들이 1~2명씩 각 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식민 치하에서 수많은 식민지 교사와 황국신민들을 배출하게 했던 악명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