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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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祝祭 |
영어의미역 | festival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원숙경 |
[정의]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하여지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개관(槪觀).
[개설]
축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지만, 그로 인한 이윤 창출 역시 가능하다. 축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저절로 기쁨과 신명에 도취되는 흐뭇한 경험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축제의 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억압과 구속, 부족감,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축제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며 동등한 인간으로 환원되게 한다. 비록 축제의 형식은 사회적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축제의 내용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되찾게 해준다.
축제는 누구에게나 내재하는 본성을 자극하여 드러내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본능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축제는 하나의 행사이고 사회적 현상이며, 모든 인간들의 문화이다. 동적인 활동, 의식, 미적인 광경의 색채적 다양성,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깊은 의미의 표시. 그것은 바로 그 축제의 역사적 뿌리와 향토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며 축제를 찾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체감과 동질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지역축제는 향토성과 토속신앙, 그리고 대동성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사업의 일환으로 축제를 개최한다. 이러한 축제의 다양한 변모를 다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 진주라 할 수 있다.
[현황]
진주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지역축제에는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한 축제, 현대예술을 활성화를 위한 축제, 그리고 민속적인 근거로 한 축제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축제 내용 안에는 현대적 요소로 가미한 축제가 많이 있다.
우선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축제를 살펴보면, 진주논개제,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민속소싸움대회가 있다. 진주논개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순국한 논개를 비롯한 민·관·군의 충절과 진주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진주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리고 있는 전통예술행사인 의암별제 및 진주오광대의 탈춤 한마당을 한 곳으로 모아 2002년 제1회 진주논개제가 창설된 이래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이 창제한 제학으로 악·가·무가 포함되고 여성들만이 재관이 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인 의암별제를 서막으로 ‘진주의 얼, 진주의 멋 진주의 힘’이라는 주제로 매년 5월 넷째 주 금·토·일 3일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볼거리는 진주검무, 신관용류가야금산조, 선유락 등과 같은 전통예술과 창작탈전시회, 논개의 순국 재현, 혼 건지기 및 혼 달래기 행사 등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 역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신호로 풍등을 하늘에 올리고 햇불과 함께 남강변에 등불을 띄운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미 외에도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한 통신수단인 등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이기도 하다. 유등축제는 처음에는 개천예술제의 부대행사로 개최되다가 2000년 처음으로 독립된 축제로 자리 잡았다. 행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하여 초혼점등, 풍등 날리기, 소망등 띄우기, 시내 행사장주변 청사초롱 달기 등과 같은 다채로운 행사로 이루어진다.
진주민속소싸움대회는 매년 5월과 10월에 개최되고 있다. 이 축제는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예전에는 진주의 ‘큰판(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이었다. 투우가 벌어지는 며칠 동안은 군중들의 함성과, 투우로 일어나는 모래먼지로 진주를 덮었다고 한다. 이러한 진주투우는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억압된 울분을 대신하여 주었고, 왜군들이 진주땅에 들어설 때 수만 군중이 백사장을 뒤엎고 시가지를 누벼 겁에 질려 남강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며칠을 머물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진주민속소싸움대회는 진주시민들의 기백을 이어가는 축제라 할 수 있다.
지역예술의 발전을 위해 개최되는 행사로는 개천예술제, 영호남연극제가 있다. 전자의 경우, 진주지역의 예술한마당이라는 의미 외에도 지역민들 간의 대동화합과 지역예술의 계승이 부각되는 축제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특정 예술 한 부분을 부각시켜 지역 간의 화합과 진주의 예술을 우수성을 외부에 알리는 대외적인 축제라 할 수 있다.
개천예술제는 1949년 정부수립의 실질적인 자주독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제1회 영남예술제로 개최되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과 1979년 10·26을 제외하고 매년 그 맥을 이어온 국내 최대·최고의 예술제이다. 1959년 영남예술제에서 개천예술제로 바꿔 개최되었으며, 1964년부터 1968년까지 국가원수가 개회식에 참석하는 최초의 예술제로써도 그 의미가 있다. 1974년에는 순수예술의 대중화란 주제설정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고, 1983년에는 경상남도 종합예술제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 축제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예술경연을 통해 우리나라 예술발전에 이바지하는 많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양성해 왔다는 점이다.
영호남연극제는 1988년 동서화합과 지역 연극발전을 위해 ‘영호남 연극발전을 위한 모임’이 발족되어 2000년에 첫 축제가 열린 행사이다. 개최지는 경상남도 진주와 전라남도 순천에서 격년제로 개최되며, 첫 개최지가 진주라는 점이 진주가 가지는 예술성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 개최방식은 매년 6~7월 중 참여단체 전원이 낮에는 세미나, 워크숍, 토론회 등을 하고, 밤에는 공연 및 공연관람을 함으로써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킨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이 진주에서 개최되고 있는 다양한 축제는 진주의 역사와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진주지역공동체의 활성화, 더 나아가 세계 속에 진주의 기개를 보여주는 성스러운 몸짓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