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308 |
---|---|
한자 | 晋州緋緞 |
영어음역 | Jinju bidan |
영어의미역 | Jinju silk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진주지역의 전통산업인 견직양잠산업의 특산품.
[개설]
진주지역에서는 삼한시대부터 견직물을 생산했으며, 이때부터 뽕밭을 조성하고 견직물을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근세에 들어서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견직공업의 선구는 1920년대에 진주에 설립된 동양염직소(東洋染織所)[현 대안동 우리은행 자리]이다. 당시 동양염직소는 일본에서 역직기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근대식 견직공장의 시작을 열었다. 이처럼 진주의 비단공장에 근대화된 직물기계가 도입된 이유는 산청·함양의 질 좋은 누에고치와 풍부한 노동력이 바탕이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진주의 남강의 물로 염색하면 비단의 색깔이 고와질 뿐 아니라 변색이 되지 않아 비단 생산지로 진주가 최적지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진주견직]
진주의 견직공업은 해방 이후 전국적으로 견직과 양잠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는 그동안 일제의 강제적인 양잠육성정책에 대한 반발로 농민들이 양잠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의 대표적 공장이었던 동양염직은 시설을 현대화하고 역직기로 문양을 넣는 문직도 했다. 당시 진주에서 생산한 ‘진주뉴똥’은 생사로 베를 짜서 물에 삶아 염색을 하는 후염처리공정을 거친 것으로 물세탁이 가능한 견직물이었다. 뉴똥생산을 시작하면서 진주의 견직공업은 활성화의 발판을 마련했고, 생산된 제품은 전국적으로 판매되었다.
이어 19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는 과정에서 견직산업에 대한 정부 주도의 중점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섬유수출 붐이 일어났고 저렴한 노동력을 대가로 섬유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섬유공업이 호황을 누렸고, 진주지역도 견직공업이 가장 대표적인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1970년대까지 진주에는 강남동·칠암동·망경동을 중심으로 수많은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은 모두 남강의 물을 이용하기 가까운 입지적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진주의 견직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은 1978년 진주에 상평공단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1970년대 말까지 진주시내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견직 관련 공장들이 상평공단에 입주, 넓은 부지에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면서 명실상부한 진주의 대표산업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진주지역의 입지여건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섬유산업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내수량의 70%를, 수출량의 10%를 차지하는 비중을 차지했다. 진주지역의 견직산업이 비록 섬유산업 전체에 있어서 그 비중은 미미하였으나 견직산업만 분리해서 본다면 전국적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현황]
진주의 견직산업은 지역적인 여건으로 볼 때 남강의 물을 이용한 전통적 비단의 명산지로 이탈리아 꼬모, 프랑스 리옹, 중국의 소주, 일본의 경도와 더불어 세계 5대 실크명산지로 발전해 왔다. 기업체수 전국 대비 70%를 차지하고, 내수 견직물의 약 80%를 생산하는 전국 제일의 실크단지이다. 또한, 공동브랜드인 실키안(silkian, 실크시민의 뜻)과 진주기라(최고의 비단이란 뜻)를 상표로 등록하여 진주비단을 국내외에 홍보, 판매하고 있다. 진주시 문산읍 삼곡리 일원에는 2008년 11월 7일 착공하여 2009년 12월에 준공된 실크밸리(silk-valley, 실크전문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지역혁신특성화사업(RIS)으로 최종 선정돼 진주실크산업의 획기적인 중흥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