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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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德章 |
영어음역 | Yu Deokjang |
이칭/별칭 | 자고(子固),성유(聖攸),수운(峀雲),가산(茄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편세영 |
성격 |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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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유성삼(柳星三) |
성별 | 남 |
생년 | 1675년 |
몰년 | 1756년 |
본관 | 진주(晋州) |
자 | 자고(子固)|성유(聖攸) |
호 | 수운(峀雲)|가산(茄山) |
대표관직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고(子固)·성유(聖攸), 호는 수운(峀雲)·가산(茄山). 『진양지』에 따르면 묵죽을 잘그렸다는 유진동(柳辰仝)의 6대손이며, 유혁연(柳赫然)의 종손이자 사간(司諫)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생애]
벼슬은 종2품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묵화(墨畵)로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조선 후기의 신위(申緯)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墨竹畵家)로 일컬어진다.
[활동사항]
유덕장은 이정의 묵죽화 양식을 이어받았는데, 대나무의 마디를 강조하는 선을 거의 직선에 가깝게 그어 마디 부분의 입체감이 이정의 대나무만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그 밖에도 풍죽(風竹) 또는 설죽(雪竹)을 그릴 때 짙은 먹의 대나무와 그보다 훨씬 엷은 먹의 대나무를 대조시켜 그들 서로간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수법도 이정의 것을 따랐다.
다만, 토파(土坡 : 흙으로 쌓아 올린 둑)를 그리는 데는 이정보다 간단하게 선으로만 그리든지 음영(陰影)을 조금 넣고 끝이 뾰족한 점을 수직으로 찍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나무 잎을 묘사한 필치 또는 먹의 농도 조절 면에서 볼 때 유덕장은 이정의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작품]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는「설죽」(1746년, 간송미술관 소장),「신죽도」(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설죽도(雪竹圖)」(174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이밖에「황강노절(黃岡老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