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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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洞 |
영어공식명칭 | Gyo-dong |
이칭/별칭 | 교리,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밀양시 중앙의 동 지역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밀양강 유로를 경계로 산외면 남기리와 마주 보고 있으며, 서쪽으로 내이동과 부북면 용지리와 접하고 있다. 북쪽의 상동면 안인리와 가곡리 사이에는 구릉성 산지와 함께 밀양강이 흐른다. 남쪽으로는 추화산[242.4m]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내일동과 용평동이 있다. 자연 마을로 교동을 비롯하여 춘복, 모례가 있다.
[명칭 유래]
‘교동’ 지명은 향교에서 비롯되었다. 밀양향교는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에 세워져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그곳에 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2년(선조 35) 부사최기(崔沂)가 옥교산(玉轎山) 중턱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교동마을이 형성되어 그 지명이 유래하게 되었다. 『해동지도(海東地道)』[18세기]에 읍성 북쪽에 향교가 묘사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리 일부가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교동리로 개설되었다. 1918년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교동리가 되었다. 1931년 4월 1일 읍제 시행에 따라 밀양면이 밀양읍으로 개칭되면서 교리가 되었다. 1988년 6월 22일 교동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9년 1월 1일 밀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이 되었다.
취락은 향교 일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밀주지(密州誌)』 등의 지리지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 중 본 마을인 교동은 밀양손씨가 입거하여 동족 마을을 이루었다. 춘복마을(春福마을)은 일명 ‘범북’이라고 부르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향교의 북동쪽 산록에 있다. 춘례마을은 향교 동쪽의 밀양강 변에 있는 마을로 인근에 손영제(孫英濟)[1521~1588]의 별서였던 오연정(鼇淵亭)이 있다. 춘례마을은 조선시대 영남로가 지났으며 구한말 춘례마을 일대에 경부선 철도 노선이 부설되었다. 당시 밀양역이 읍치와 떨어진 지금의 가곡동 일대에 입지하여 교동 일대는 전통적인 경관을 유지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의 옥교산[538.5m]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산지가 교동 일대에서 낮아지다가 다시 추화산으로 이어진다. 춘복천이 동쪽으로 흘러 밀양강으로 유입하면서 차현들을 이룬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4.61㎢ 면적에 2,759세대, 5,817명[남자 2,818명, 여자 2,99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교동에는 밀양시청과 밀양종합운동장을 비롯하여 밀양아리랑대공원,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가 있어 행정 및 문화 중심 기능을 하고 있다. 추화산에 있는 밀양 추화산성[경상남도 기념물]은 삼국시대 초기의 성곽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내 백운사(白雲寺)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 백운사 동종(密陽白雲寺銅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