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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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禮里 |
영어공식명칭 | Ory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숙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오례리(五禮里)는 밀양시 부북면 중앙부에서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교동과 내이동, 서쪽으로 무안면 마흘리, 북쪽으로 덕곡리, 남쪽으로 감천리와 제대리와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오례리는 신라의 오정부곡(烏丁部曲)이었다. 오(烏)와 오(五)는 서로 음이 같으므로 ‘오례리(五禮里)’라 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전에 호군(護軍) 이선지(李先智)가 어머니 장씨(將氏)를 따라 어머니의 고향인 부북 지동(府北池洞)[현재 제대리(提大里)]에 이거(移居)하여 살았으나, 1611년(광해군 3)에 오례리(烏禮里)로 옮겨 머물러 살았다. 이선지의 충효와 예의범절이 출중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므로 그 뒤 ‘오례(烏禮)’를 ‘오례(五禮)’로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대구부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으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그대로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오례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리가 되었다.
오례리는 신라의 오정부곡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바위 틈에서 솟아 나는 맛이 달고 시원한 약샘이 있으며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이 있었다. 사직단은 원래 남산(南山) 아래에 위치하였는데 1580년 경 부사(府使) 하진보(河晉寶)가 오례마을 남쪽으로 옮겼다. 단(壇)은 2층으로 축조하고 단 위에 오색(五色)의 흙으로 덮었다. 성황사(城隍祠)와 함께 매년 관부에서 제사를 지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자연환경]
오례리는 화악산(華嶽山) 지맥인 고암산(高岩山) 능선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 시루봉[증산(甑山)]줄기에 둘러싸여, 북서쪽으로는 산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동남부를 중심으로 들이 형성되었으며, 들이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되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75세대, 130명[남자 68명, 여자 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오례리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밀양 의첨재(密陽依瞻齋)가 있다. 함평이씨(咸平李氏)의 재숙소(齋宿所)이다. 광해군 때 무과에 올라 호군을 지낸 이선지가 어머니의 묘소 아래에 임시 거처로 짓고 살던 집이었는데, 집터만 남아 전해 오던 것을 후손들이 숙종[재위 1674~1720] 때에 제실(齊室)로 중창하였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건물을 수축하다가 1897년(고종 34) 종손인 이만헌(李萬憲)이 종중의 의견을 모아 현재와 같이 중수(重修)하였다. 정당(正堂)은 높은 축대 위에 맞배지붕 5칸의 건물로 지어졌으며, 2칸의 마루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 1칸, 오른편에 2칸의 방을 두었다. 정당의 맞은편 입구에 대문채가 있고 좌우에 행랑방(行廊房)과 부엌이 각각 붙어 있으며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설치되어 3문(三門)의 형식을 갖춘 고자사(庫子舍) 겸용의 건물이다. 정당의 뒷편에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는데, 본래 이선지가 살던 8칸 정침의 집터로 전해 온다. 정당에는 안동 사람 김녕한(金寗漢)이 지은 “의첨재기(依瞻齋記)”가 붙어 있다. 밀양시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는 안골, 분지실골 등 계곡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