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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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 遺蹟 |
영어공식명칭 | Remains in Salnae, Milyang |
이칭/별칭 | 밀양 활성동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 466-5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현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12월 19일~2002년 12월 24일 - 밀양 살내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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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밀양 살내 유적 -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 466-5 |
성격 | 생활 유적 |
면적 | 약 19,834m²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에 있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의 생활 유적.
[위치]
밀양 살내 유적은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 466-5에 있으며, 이 때문에 밀양 활성동 유적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밀양강의 중하류부 좌안의 범람원이다. 밀양 살내 유적 북서쪽에서 동천이 수직 방향으로 밀양강에 합류하므로 밀양강의 유로를 서쪽으로 치우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살내 쪽은 활주사면으로 퇴적 지형인 범람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범람원은 자연 제방, 배후 습지로 나뉘며, 배후 습지의 동쪽은 산지에서 공급된 퇴적물들이 경사가 급한 선상지 형태로 쌓여 있다. 자연 제방에는 밀양강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고, 자연 제방의 길이 방향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배후 습지와 선상지의 선단부는 논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밀양 살내 유적은 부산-대구간 고속도로 건설 공사[7공구]에 동반한 발굴 조사에서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 조사는 2001년 12월 19일부터 2002년 12월 24일까지 실시되었고, 조사 면적은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 살내 465-5번지 밭 일대 약 19,834m²이었다.
[형태]
밀양 살내 유적의 조사된 유구는 신석기시대 수혈 14기, 집석 유구 9기, 유물 산포지, 청동기시대 주거지 24동, 수혈 7기, 구 3기, 집석 유구 1기, 돌널무덤[석관묘] 2기, 적석 제단 유구 2기, 고인돌 상석 11기, 밭터 2개층, 삼국시대 구 1기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은 평면이 모두 원형이며, 규모는 지름 1m 이내이고 깊이도 얕은 편이다. 집석 유구는 평면이 타원형 내지는 원형이다. 특히 1~7호는 지름 1m 내외의 소형이며, 붉게 피열된 흔적이 확인된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모두 3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가장 하층은 전기, 중층은 후기, 상층은 청동기시대 후기~삼국시대에 해당한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구는 장방형 주거지 10동이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600~1,940㎝, 너비 400~790㎝의 중형·대형으로 위석식(圍石式)과 무시설(無施設) 노지, 주혈, 초석(礎石)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구는 방형·원형의 주거지 14동과 수혈, 구,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다. 평면 방형 주거지는 길이 440~564㎝, 너비 434~538㎝의 중형이다. 평면 원형 주거지는 중앙에 타원형 수혈과 외곽에 주혈을 갖춘 송국리형(松菊里型)으로 지름 500㎝ 내외이다. 돌널무덤은 주거지가 군집된 동쪽에 강의 흐름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벽석은 판석을 세워쌓기하여 ‘ㅍ’자형으로 결합하였다. 벽석과 묘광(墓壙) 사이는 천석(川石)으로 보강하였다. 바닥은 3매의 판석을 깔았다.
청동기시대 후기~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유구는 밭과 적석 제단이다. 밭은 조사 지역 서쪽 중앙부에서만 확인되며, 조사 구역 외곽으로 계속 확장된다. 밭은 상하 2개 층으로 확인된다. 적석 제단은 고인돌과 유사하다. 길이 970㎝, 너비 557㎝ 내외로 먼저 가장자리에 두께 5㎝ 내외의 판석을 깔았다. 그 위에 할석(割石)을 3~4단 정도 쌓고, 내부에는 할석과 강돌을 무질서하게 채웠다.
[출토 유물]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다량의 토기 조각과 석기, 석재 등이 확인된다. 토기는 심발, 호, 완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문양은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돌문(刺突文), 압인문(押印文), 침선문(沈線文)은 소량 확인된다. 석기는 대부분 타제품(打製品)이며, 마제품(磨製品)은 소량 출토되었다. 굴지구, 돌도끼, 찍개, 대팻날돌도끼, 횡장석도, 소형 돌칼, 완형 석도, 지르개, 갈판, 갈돌, 지석, 새기개, 뚜르개, 돌낫, 석창, 박편 석기, 미완성 석기, 몸돌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전기 유물은 유물은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간돌화살촉[磨製石鏃], 적색간토기[塗磨硏土器], 장주형돌칼[長舟形石刀], 조갯날돌도끼[蛤刃石斧], 갈판, 그물추, 관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 유물은 방형 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적색간토기, 석창(石槍), 어형석도(魚形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원형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 반월형돌칼, 어망추, 돌끌[石鑿], 돌보습 등이 출토되었다. 석관묘에서는 적색간토기 1점을 부장하였다.
또한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밭과 적석 제단이 있는데, 밭에서는 원형 점토대토기가, 적석 제단에서는 마제석감과 기하학 문양이 음각된 바위그림 2매가 출토되었다.
[현황]
현재 밀양 살내 유적의 대부분은 부산대구고속도로에 편입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살내 유적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에서 삼한시대로 전환되는 전환기의 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송국리형 주거지 형태를 통하여 외부 문화와의 교류 상황도 볼 수 있다.